대선을 앞둔 정치권 못지않게 금융가도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겉으로 금융자율화를 내세우며 금융개혁을 외치던 정부가 뒤에 숨어
서는 바둑알 옮기듯 시중은행장 인사의 사전 각본을 짜고 있었던 사실
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은행가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30일 열린 외환은행 은행장 추천을 위한 비상임이사회에서 은행권의
반발분위기가 그대로 나타났다.
외환은행 노조에서는 회의직전 한때 회의장을 점거, 회의가 지연되
기도 했다.
비상임 이사들도 최대 주주임을 내세워 홍세표 한미은행장을 외환은
행장에 앉히려던 정부의 의도에 일단 반기를 들었다. 후임 행장 추천을
일단 보류하고, 며칠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
비상임 이사회에 앞서 29일 비공식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는 몇몇 비
상임이사들이 "말도 안되는 처사"라며 화를 내면서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은행가는 스스로 '훌륭한 제도'라며 극찬했던 비상임이사회 존재 자
체를 부정해 버린 재정경제원의 처사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표정이다.
외환은행 일부 간부들은 정부가 '은행장 추천위 제도'를 폐지하고,
주주대표들로 구성된 비상임이사회제도를 도입하면서 했던 말들을 상기
시키며 분함을 참지 못했다.
한 간부는 "재정경제원이 외부(정부와 권력층) 입김을 배제하고, 은
행장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고 자랑한 지가 엊그제 같은
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다른 간부는 "재경원이 국책은행장에 낙하산 인사로 재경원의 인
사숨통을 터온 것이 부족해 이제는 시중은행까지 넘보고 있다"고 혀를
찼다.
한보사태의 암담한 터널을 지나 오면서 정부가 관치금융의 폐해를
반성하자 금융가는 한때 기대에 부풀었다.
대통령직속 기구로 설치된 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개혁 과제를 추진
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이런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가 서울은행 장만화행장의 사임을 종용한 데 이
어, 청와대와 재정경제원마저 시중은행 인사에 개입하자 "금융개혁 좋
아하시네…"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한보사태에서 오직 재경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실만이 아무런 교훈
을 얻지못한 것같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때마침 김대통령은 30일 연설에서 금융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언급
조차 하지 않아 금융인들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