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유창혁 9단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쓸쓸해 보인다. 세계
최고공격수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최근 전적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얻었던 도전기에서 맥없이 패배한 반면 자신의 타
이틀은 쉽게 내주고 있다. 우선 전적과 승률부터 보자. 30일 현재 그의
전적은 11승 14패로 45.0%에 머물고 있다.

지난 4월 10일 현재 8승 12패(승률 40.5%)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
다는 게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런 전적과 승률은 전에 없던 최악의 결
과라고 할 수 있다. '94년 62승 30패(67.4%), '95년 48승 31패(60.76%)
를 기록했던 유9단은 지난해에도 46승 25패(64.79%)로 그동안 60%대의 승
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은 40%대를 유지하기도 바쁜 것이다. 이런 사이 그
는 다 잡았던 대어를 속속 놓쳤다.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는 이창호
9단과 맞붙었다가 3연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2억원의 우승상금이 눈앞
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KBS바둑왕전 우승자였던 유 9단이 올해는 중반
에 허무하게 탈락했다. 또 패왕전 도전권을 겨우 따냈으나 도전기에서
조훈현 9단에 1승3패로 무너졌고, 후지쓰배에서는 본선 2회전에서 좌초하
고 말았다.

SBS연승바둑최강전에서 우승해 2연패한 것이 그로선 그나마 다행이
었다. 이런 그의 난조는 이창호.조훈현.서봉수 9단 등 이른바 한국바둑
4인방의 선전과는 크게 대조된다.

이창호 9단은 29일 현재 31승 12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조훈현 9단
도 30승 10패로 펄펄 날고 있다. 또 서봉수 9단도 18승 9패로 9단의 별
칭인 입신을 무색케 하진않고 있다. 유 9단의 난조는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유 9단에 쓰라림을 안져준 대표적 기사는 조 9단과 이 9단이다. 조
9단은 유 9단에 4승을 건진 반면 1패만을 내주었다. 이 9단도 4승 2패로
우위를 보였다.

특히 LG배에서 완패한 것은 유 9단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즉 올
들어 당한 14패 중 조 9단과 이 9단에만 8패를 기록한 것이다. 유 9단
의 이같은 슬럼프가 지난해 삼성화재배 충격 때문이라고 보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

응씨배 우승으로 3억3천만원의 우승상금을 챙긴 그는 내친김에 같
은 액수의 우승상금이 걸린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랐으나 일본의 요다 노
리모토9단에 석패하고 말았다.

즉 욱일승천하던 기세는 삼성화재배 패배를 계기로 급전직하하게
된 것. 보통의 기사로서는 평생 바둑을 두어도 만지기 힘든 삼성화재배
우승상금을 눈앞에서 놓친 그가 그만큼 큰 충격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분
석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