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북일과 연장도 무승부, 다음날 재격돌...군산상 우승 ##.

【광주=강호철기자】"우리 학교가 유난히 청룡기와는 인연이 없었어
요. 김용남 김성한선배가 있던 72,74년에도 준우승에 그쳤구요. 선배들
이 하지못한 우승을 우리때 해내 기쁨도 더욱 컸어요.".

82년 37회 대회 우수투수 및 우수선수상을 받은 조계현(33·해태
투수). 그가 군산상고를 다닐때 고교야구판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했
다. 81년에는 성준 유중일의 경북고와 박노준 김건우의 선린상고가 있
었다. 안성수 조양근이 활약한 천안북일고, 신일고 등이 호시탐탐 우
승을 노리고 있었다.

"특히 천안북일고가 우리와 우승을 다투다시피 했어요. 2학년때 대
통령기대회에서 공교롭게 1회전에서 맞붙어 완투했는데 1대0으로 졌어
요.".

군산상고는 낙향후 청룡기 우승을 위해 투지를 불태웠다. 백기성감
독아래 아침 8시부터 저녁9시까지 식사시간을 빼곤 모두 연습이었다.

스스로 훈련을 자청, 밤새 학교운동장내 비닐하우스에서 타격연습을 하
는 친구도 있었다.

"두번 실패를 할 수는 없다며 독기를 품었어요. 나무로 난로에 불을
때고 라면을 끓어 먹으면서 독하게 훈련했어요." 조계현을 비롯한 백인
호(현 해태), 고장량 한경수 장호익 오석환 이승우등이 당시 멤버. 이
중 오석환씨는 프로야구 심판, 이승우씨는 군산상고 코치를 맡고 있다.

82년 청룡기서 군산상고는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1차전은 무난
히 통과했고, 2차전서 충암고를 만나 6대0으로 뒤지다 4회 조계현의 투
런홈런을 계기로 13대9로 역전승했다.

"천안북일고와의 결승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전국대회 결승사
상 첫 재경기를 했었거던요.".

군상은 결승서 조계현의 호투속에 1대0으로 앞서다 9회말 투아웃 주
자2루에서 평범한 숏땅볼이 불규칙바운드가 되는 바람에 아깝게 동점을
허용했다.

12회 연장에서도 승부가 안나 다음날 재경기를 치렀다. 타격전 끝에
군상의 9대5 승리.

"그때 최다안타, 타점상도 있었으면 4관왕이었을텐데. 어쨌든 도민
들의 열기가 대단했어요. 전주로 내려와서 지프차를 타고 도청으로 가
도지사의 환영을 받은 뒤 카퍼레이드를 펼쳤지요. 이리와 군산에서는
물론이구요.".

청룡기 여세를 몰아 봉황기때도 팀우승을 이끈 조계현은 무리한 등
판으로 팔꿈치를 다쳐 3학년때는 거의 볼을 던지지 않았고 연세대에서
는 타자로 전향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그때 무리를 안했더라면 더 성장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은
퇴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뛰고 있어요. 가끔 집에서 심심
하면 청룡기 결승전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옛 추억을 되살리죠. 아내(안
현주씨·32)가 젊었을때 내 모습이 촌티난다고 막 놀려대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