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길위의 혼⑦
##.
"저것들 치워버리랬는데 왜 아직도 그냥 뒀어? 내일이래두 당장 내다
버려 누굴 줘버리든지.".
인철의 눈길이 그쪽에 멈춘 것을 알아본 전경이 갑작스런 짜증으로
여자를 나무랐다.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날 서
있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미욱스럽게 느껴질 만큼 태평스런 목소리로 받
았다.
"인순이 아빠, 또 와 그래예? 집에 책이 있는 게 어딘데? 하마 방안
이 얼매나 유식해 빈다꼬. 그런데 멀라꼬 돈주고 산 책 자꾸 갖다 내삐
리라 캐싸예?"
"입시책 몇권 가지고 크게 유식해 뵈겠다. 잔소리 말고 갖다 버리라
면 갖다버려!".
"참말로 왜 저꾸 쌌는지 모리겠네. 내가 멀 보고 순사한테 반해 시
집온지 압니꺼? 바로 저 책이라예. 저 책 보고 있는 모양 세상에 없이
좋드라마는 어예 다시 딜따볼 생각은 않고…."
"기집 자식 주렁주렁 달고 대학은 무슨 대학이야? 정말 못 알아듣겠
어?".
기어이 전경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서야 여자가 겁먹은 눈길로 움
츠러 들었다.
"알았임더, 알았다꼬예. 엿장사 오믄 엿이라도 바꿋지 뭐….".
전경은 첫인상처럼 한번 성깔을 내면 매서운 데가 있는 사람같았다.
그러나 인철에게는 그런 그가 매섭기보다는 애처롭게 느껴졌다. 왠지 자
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의 상처같아 얼른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제 일어나지. 방이 좁고 어린애가 있어 재워줄 수는 없고, 나가자
구.".
전경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무엇에 심사가 틀어졌는지
말투가 다시 해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인철은 무슨 죄지은 사람처
럼 그런 변화에 아무런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전경은 인철을 데리고 마을 안쪽 다시 한군데 불빛이 빠안한 집으로
안내했다. 고맙게도 잘곳을 마련해줄 작정인 듯했다. 전경은 찬바람 이
는 걸음걸이로 말없이 앞서 걷고 있었지만 인철은 그런 그에게서 오히려
따뜻한 정을 느꼈다. 더운 물에 발을 담그고 주무른데다 저녁을 얻어먹
으며 쉰 덕분인지 이제는 걷기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따라가면서 보니 불이 꺼져 있어 그렇지 마을은 처음 느낀 것보다 훨
씬 커보였다. 어둠 속이지만 어림잡아 스무집은 넘을 것 같았다. 하기야
전경이 배치된 향군초소가 실효있게 운영될만한 예비군 병력자원을 가졌
다는 점으로도 그만한 크기는 진작부터 예상할 수도 있었다.
전경이 인철을 데려간 곳은 마을의 4H회관 이었다. 4H운동이 한창 활
발하던 시절 정부보조로 지어진 여남은평의 블록집인데 회의실로 쓰는
장방에 불빛과 함께 두런두런 얘기소리가 새나오고 있었다.
"어? 아직 교대들 안했어요? 시간 넘었잖아?".
방문을 연 전경이 나무람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예비군복을 입은 청
년 네댓명이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있다가 그중의 하나가 넉살좋게 받았
다.
"이판 끝내고 일어설낍니더. 촌에 뭐 시계가 있나, 라디오가 불어주
나, 쪼매이 늦어보이 어땁니꺼?"
"이 냥반들 안되겠어. 예비군도 군인이야. 초소근무도 작전이고, 교
대시간이 십오분이나 넘었는데 정말 영창 가고싶어서 이래요? 어서 일어
나요!".
전경이 자신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예비군들에게 반말까지 섞어 목소
리를 높였다. 그제서야 예비군 셋이 화투판을 덮고 일어났다.
"에헤이, 최순경 때매 본전찾기 다 틀링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
다꼬 보자, 이거 얼매 잃었노? 십원짜리 동전내기에 잃은 게 이백원도
넘는가베.".
그렇게 우스개로 얼버무리기는 해도 지시를 가볍게 여기는 눈치들은
아니었다. 그들을 끌어내듯 한 전경이 남은 한사람을 보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