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자에 무늬새긴 `상감'의 신비...곡선-색에 섬세함담겨 ##.

본에서 활약하는 대만출신의 평론가 구영한(규우에이깐)은 "한마디

로 일본인은 직인적 기질의 국민이며 중국인은 상인적 성격의 국민"이라

고 말했다. 전통적인 사농공상 가운데서 중국인은 '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반해 일본인은 '공'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일

본인은 물건을 만드는 일에, 중국인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장기가 있

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한국인은? 이것은 앞으로 동아

시아시대, 또는 태평양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미래의 진로를 성찰하는

데 매우 시사적인 명제라 생각되기에 구영한의 책을 읽은 뒤로는 혼자서

도 곧잘 이 문제를 되씹어보곤 한다. 하나 아직도 시원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미래의 해답은 일단 유보해두기로 하고 눈을 과거로 돌려본다. 그러
면 나는 금방 한국에도 찬란한 '직인'들의 시대, 아니 '장인'들의 세기
가 있었다고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12세기 고려의 장인들말이다….

한국의 회화사상 정교와 세밀을 추구하는 일종의 '아크리비(Akribie=
엄밀성.세심성)의 예술'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 '화
려함의 극치'라 칭송되는 고려 불화를 꼼꼼한 솜씨로 그려낸 장인들.

팔만대장경 판에 5천수백만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자체의 정자
로 한자 한자 칼로 새겨낸 장인들.

신비스런 광채를 안으로 머금고 있는듯 밖으로 어른거리게 하는 조개
의 엷은 조각조각을 깨알처럼 실낱처럼 잘게 도려 세상에 '비할 데 없는
정교함을 과시'한 나전칠기의 명품을 만들어낸 장인들….

바로 그러한 고려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한국문화사의 보석과 같은 또
다른 일품이 고려 청자이다. 고려의 불화나 나전공예품들이 지금은 그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약간 보존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국내의 소장
품은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는 형편인 것과는 달리, 고려청자의
명품은 국내의 박물관이나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질과 양에서
손색이 없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가 볼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고려청자의 세계적인 성가에 대해서 새삼 여러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다만 참고를 위해 비교를 초절한 '슈퍼러티브'(최상급)의 찬사
를 두가지만 골라서 그 보기로 삼겠다. 그 당대와 현대,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각각 대표하는 두가지 보기를-.

고려청자가 나오던 당시 송나라 사절단의 한사람으로 왔던 서긍이 돌
아가 황제에게 복명한 '선화봉사고려도경'은 고려의 인종원년(1123년)한
달동안 개경에 머물면서 현지의 체험을 기록한 동시대인의 리포트다. 비
단 고려청자만이 아니라 고려나전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하고 있는 매
우 소중한 문헌이지만 너무나 유명하기 떠문에 여기서는 접어 두기로 한
다. 그보다는 태평로인이 저술한 '수중금'이란 책에 북송말 중국의 상류
사회에서 천하제일 열가지를 뽑는 가운데 중국 청자를 젖혀놓고 '고려비
색'이라 하여 비취옥색이 감도는 고려청자를 꼽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야 되겠다. 최근까지 중국의 유적지에서 종종 고려청자가 출토되곤 한다
는 사실도 그러한 '수중금'의 평가를 방증해주는 사례로 보아야 될 것이
다.

편 현대 서양에서의 평가에 관해서는 동양 도자기 전문가인 영국의

윌리엄 하니(William B Honey)의 말을 뽑아본다. "최고의 고려도자기는

독창적일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지금까지 만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아하

며 꾸밈새 없는(the most gracious and unaffected) 도자기이다. 그것은

도자기가 갖는 모든 미덕(virtue)을 갖추고 있다.(중략) 사실 이 고려

도자기는 중국인조차 거의 도달하지 못했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미술사를 쓴 맥큔(Eveley Mccune)은 동양의 도자기란 '유약)'

과 '형태'와 '장식'의 세가지에 따라 서로 차별화된다고 적고 있다. 유

약이 도자기의 색상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결국 빛깔, 모양, 꾸밈

새에 따라 도자기가 특성화된다는 뜻이다. 최순우 고 국립중앙박물관장

도 고려청자의 삼대특장으로 '비색의 그윽함'과 '곡선의 미끄러움'과

'상감의 장식기법'을 들고 있었다.

'비색'이라는 청자의 중국식 호칭을 고려에서 스스로 '비색'이라고
고쳐 부른 것은 광택이 고요하고 유열이 없는 고려청자의 유색이 비취옥
색의 아름다움으로 중국것과는 다른 고려적 특징을 지녔다는 자부심의
발로라고 최순우는 풀이하고 있다.

에메랄드 보석의 빛깔과도 같다는 고려청자의 유약도 물론 하루 아침
에 개발된 것은 아니다. 정량모 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지난 74년 경북
월성군 화산에서 발견한 회유계 시유를 한 신라의 도기요지 등은 우리나
라의 토착적 회유기술의 오랜 전통을 입증해 주고 있다.

외국인들은 고려청자의 유약이 갖는 아름다움과 함께 그 모양에 있어
서도 '원시적 형태를 한' 도자기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
탄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비밀은 고려의 도공들이 중국의 월주요 도
공의 완전하게 발달한 기술을 습득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월주요 계통의 청자기술을 바닷길을 통해 들여와서
고려청자를 생산한 주요 요지로 밝혀지고 있는 전남의 강진군 대구면 사
당리와 전북의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는 옛 백제의 고토. 여인의 어깨처
럼 부드러운 고려청자의 '곡선의 미끄러움'이 백제적인 '선의 미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보기에는 여간한 무지렁이가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고려자기의 비색은 흉내낼 수가 없다고 중국시인이 개탄했다는 사실
을 맥큔은 알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송의 청자와 고려청자는 빛깔과 형태
에 있어서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대신 고려청자
를 완전히 독자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그를 평가하는 최후의
제3기준인 '장식', 바로 '상감기법'의 장식이다.

'상감'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판이나 그릇이나 함과 같은 물건의 표
면에 각도(새김칼)로 무늬를 파서 (음각), 그 판 흔적에 금, 은 또는 잿
물 등을 넣어 채우는 기술이다. 청자상감에 있어서는 무늬를 새긴 흔적
에 하얀 또는 검붉은 잿물을 붓으로 바른 뒤 그것이 마른 뒤 청자 유약
을 씌워 구워내면 무늬는 흰색이 도는 검붉은 색으로 비치면서 유약을
거쳐 투시된다. 이 상감기법은 고려 도공들의 창의로 개발되었으며 세계
도 자사상에 있어서 독보적인 장식기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기법으로
해서 고려청자는 그 위에 갖가지 그림과 문양을 새겨그려서 우리에게 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려청자에 상감기법이 개발된 것은 12세기 중엽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상감기법의 창안은 그에 앞서 고려 청동기에 은사로 그림이나
문양을 상감하는 금속공예기법에서 착상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예컨
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국보 92호)이 그
보기이다. 뿐만 아니라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감탄한 라전기법 또한 자
개무늬를 상감하는 기술에 다름이 아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나는 곧잘 혼자서 흥분한다. 상감문양의 고려
청자, 자개를 상감한 고려의 나전칠기, 은입사를 상감한 고려의 청동기
명, 금이를 상감한 고려의 감지금이화엄경보현행원변상도(현행원변상도·
국보 235호 호암미술관소장)등…. 고려의 상감기법, 아니 상감예술, 그
리고 그를 위한 보편적인 연장으로 쓰던 각도(새김칼). 그것은 또한 팔
만대장경의 5천3백만자의 경문을 새긴 각도이기도 하다.

이 새김칼의 명인인 고려 장인!.

려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는 바로 그러한 고려 장인의 세기였다.

나는 15세기의 세종대, 18세기의 영정조대에 이어 다가오는 21세기가 3

백년을 주기로 되몰아치는 한국문화의 중흥기가 될 것이란 얘기를 지난

10년동안 곧잘 겁없이 떠벌여 왔다. 그러나 실은 그에 앞서 세종대의 3

백년 이전에 한국문화의 또다른 중흥기인 12세기의 고려청자시대가 있었

던 것을 잊어버릴뻔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