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 참여…전국에 83곳 ##.

[파리=김광일기자]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정신이 면면이 흐르는
파리 바스티유광장. 오페라 바스티유 건물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 건너편에 [카페 데 파르]라는 그리 크지 않은 간이 음식점이 있다.

일요일 오전 11시. [등대]라는 뜻의 이 음식점은 이미 한시간 전
부터 발디딜 틈이 없이 손님들로 빽빽하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관광객들의 발길마저 뜸한 휴일 오전인데도 [거리의 철학자들]이 빈
자리를 남겨놓지 않은 것이다.

이름하여 [철학카페]. 중절모의 노신사, 청바지의 대학생, 교수인
듯 보이는 중년부인, 할머니, 휠체어를 탄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등 30평 남짓한 카페가 2백여 토론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수십
명은 서 있을 수밖에 없을 정도.

이윽고 11시5분쯤이 되자 이날의 사회자인 파스칼 아디(35)씨가
입을 열었다. {먼저 오늘 토론에 부쳤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말씀해 주세요.}.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노트에 뭔가를 심각하게 적어나가
다가 조용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우주의 영원성 문제,
가정의 정당한 존립성 등 10가지 제안중 아디씨는 [질서와 무질서]를
오늘 주제로 택했다. 혼돈의 이론을 파헤쳐 보자는 것이었다.

참석자들은 직업도, 이름도 묻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견을 얘기
할 뿐이다. 담배연기가 피어 오르고, 토론자들 사이사이로 가르송(카
페 종업원)은 열심히 차주문을 받았다.

이 카페에서 일하는 조르쥬 그로시(37)씨도 음반 2장을 낸 샹송
작가이자 철학가. 그는 1년전부터 자식의 양육비가 필요해서 이 곳에
서 커피를 나르고 있다. {모두에게 개방된 철학카페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때로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도 찾아온다}며
웃었다.

이 곳에서 역시 철학잡지 [필로(필로조피의 준말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를 팔고 있는 도미니크 레슈네르(42) 여사도 철학가
이자 시인이다. 그녀는 {철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며 {나는 그것을 위해 토론과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라고 밝혔다.

철학카페는 5년 전 소르본 대학의 철학교수이던 마르크 소테씨가
발의했다. [소크라테스를 위한 커피 한잔]이라는 저서로 명성을 떨쳤
던 소테 교수는 제도적 [대학 철학]과 결별을 선언, 소르본을 떠난뒤
이곳 저곳에 철학 토론이 벌어지는 카페를 늘여나가고 있다.

소테 교수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이고, 철학가란 모
든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해결
책을 다시 의심해 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철학카페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아디씨는 {카페의 철학 토론은
자유의 무서운 훈련}이라고 정의했다. 비영리단체인 철학카페협회는
철저히 무보수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회비, 잡지판매대금 등 수익금은
철학카페를 늘려나가는 데만 쓰인다.

이러한 철학카페는 파리에만 20여개, 프랑스 전역에는 83개가 있
고, 독일,스위스, 미국, 벨기에,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지로 점차 확
산되고 있다.

이날 [질서와 무질서]의 토론은 {질서란 자유의 한가지 조건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형 결론을 끝으로 오후 1시쯤 끝났다. 익숙한 얼
굴들은 다음주 일요일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일어섰다. 도중에 자
리를 뜬 사람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