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박석태 전상무는 지점장-
심사부장-심사담당 임원 등을 역임한
의 영업 및 심사통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66년 에
입행, 30년간 에서 근무했다.

한보사건으로 구속된 이철수 행장의 추천으로
94년 이사가 됐으나, 한보철강 사건의 문책을
받아 지난 3월 주총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보사건만 없었으면 중임은 무난했을 것이라고
고위임원들은 말한다. 수줍음을 잘타고
내성적인 성격의 박 전상무는 은행을 그만둔 뒤
상당한 증세를 보이며, 자택에서 칩거해
왔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은행 동료들은 "한보사건이 터진후 의 조사를
받고, 얼마전 TV중계속에 청문회에 출석, 신문까지
받은 사건은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것 같았다"고
해석했다.

동료들은 "그는 위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어서
자살해야할 만큼 책임이 많았던 사람은 아니다"면서
그의 자살을 아쉬워했다.

박 전상무는 근무시절 꼼꼼한 성격에, 성실한
업무태도 때문에 은행내에서 신망이 상당히 높았었다.

처신도 비교적 좋아 현재 살고있는 망원동
단독주택이 80년대말 수재를 입었을때 북한에서 보낸
구호미를 받을 만큼 '가난한 은행원'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철수-신광식 전제일은행장들은 이같은 그의 능력과
자질을 높이 평가, 지난 93년부터 은행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여신심사 업무를 계속 맡겼었다.

박상무는 심사담당 임원 시절 때마침 터진 유원건설 인수,
한보철강 금융특혜의 내막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알려졌다.

실제 한보그룹 자금책임자인 재정본부장은
한보철강에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총회장을
대신해 박상무와 수시로 자금협의를 가졌었다.

95년 봄 부도난 유원건설을 한보에 넘길 때도 박전상무는
수행장의 대리인 역할을 맡아 대성산업, ,
관계자들과 인수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였었다.

사람들은 "유원, 우성, 한보 부도사건이 터졌을
때 박상무는 2~3달간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는 등
책임감이 대단히 강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진력했던 일들이 나중에 '금융비리'로
지목되고, 자신까지 청문회에 불려나간 데 대해 큰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은행 사람들의 지적이다.

수사에서 그는 "수행장의 지시에 따라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고 주장했으나, 한보관련 여신을 심사한
실무책임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박전상무는 슬하에 1남4녀를 두었으며,
둘째딸이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에 재학하고
있는 등 모범적인 가정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