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 당동에 있는 캐주얼화 제조업체 「포시즌」. 이제는 남
의 것이 되어버린 42평 반지하 공장을 윤희철씨(46)는 매일 찾아와 낯
익은 기계들을 어루만진다. 두달째 팔리지 않은 신발 수백족이 담긴 상
자들이 천장까지 쌓인 그곳은 윤씨가 94년 10월 사업을 시작한 이래
2년 넘도록 가꿔온 삶의 터전이다.

『작년 12월 이후 석달 사이 주문업체 두 곳이 부도를 냈고 자금난끝
에 공장은 채권자 손에 넘어갔습니다. 큰 아들이 부담 덜어준다고 전문
대 입학을 포기하고 커피점 아르바이트에 나섰을 때 「아버지」라는 말을
듣기조차 부끄러웠습니다.』.

「포시즌」은 종업원 11명에 연 5억원 매출액을 올리던 작지만, 건실
한 업체였다. 윤씨가 종업원들에게 연말상여금을 얼마 줄 것인지 고민
하던 작년 말, 불황에 고전하던 한 거래업체가 부도를 내고 말았다. 휴
지조각이 된 1억7천만원어치의 어음을 지갑에 쑤셔넣고, 다시는 찾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은행을 가야만 했다. 고생끝에 장만한 잠실 시
영아파트 등기부등본을 들여다 본 은행원은 『자금사정이 안좋아서…』라
며 언제나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한보땅은 담보가의 수천배 대출을 해주고 누구땅은 1원 한푼도 안
되느냐며 항의했지만 부질 없었어요. 사채업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 땜
질을 했는데 곧이어 다시 부도를 맞고나니 도리 없더군요.』.

두번째 부도는 거래업주가 행방까지 감췄다. 새 공장 주인이 들어오
는 날, 사무도구를 밖으로 꺼내며 윤씨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나마 안면이 있던 새 주인이라 윤씨가 부도후에도 공장 들르는 것을 막
지 않아 고마울 따름이다. 찾아가면 종업원들은 아직도 윤씨를 「사장님」
이라고 불러준다.

『두달간 월급도 못줬던 못난 사장을 대접해주고 점심도 함께 먹어주
니 고마울 뿐』이라며 윤씨는 고개를 숙였다. 윤씨는 반드시 밀린 임금
을 지급하겠노라 각서를 써주었고 뿔뿔이 여러공장에 흩어진 종업원들
도 윤씨가 재기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군포에 있는 공장서 집으로 돌아가는 밤전철을 타는 것도 언제
부턴가 괴로워졌다. 가죽구입부터 밑창 박는 것까지 모든 공정을 손바
닥 보듯하는 윤씨에게 전철소음은 공장기계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윤씨는 『요새 TV 한보청문회를 보며 「내가 뭔가 이상하게 사는 사람
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묘한 세상입니다. 수천만원, 수억원 부도내도 이렇게 억장이 무너
지고 죄인인 느낌으로 사는데, 수조원을 해먹은 사람은 저렇게 뻔뻔해
지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