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음반의 발명자 베르리너는 1893년부터 베르리너라는 7인치
음반을 생산 판매하면서 1895년에는 자체 축음기를 생산했다. 그러나
그의 디스크 축음기는 라이벌 회사인 에디슨과 그라포폰사(후에 콜럼비아)
에 비해 원시적인 수동식이었다.
그때 뉴저지주에 기계공장을 가지고 있던 엘드리지 존슨(1866∼1945)
과 계약, 스프링으로 턴테이블을 돌리는 축음기를 만들어 1898년에 시판
한 것이 그 유명한 베르리너 축음기다.
베르리너는 엘드리지 존슨 회사에 주문 생산한 축음기를 의 그
라마폰사를 통해 유럽각지에 보급하고 그라마폰사에서 녹음한 모든 음반
을 자기의 고향인 독일의 하노버에서 생산했다.
그러나 베르리너는 고용인 두 사람의 배신으로 1901년 미국서 쫓겨
났다. 베르리너는 회사를 캐나다로 옮기고 엘드리지 존슨은 자기가 생
산한 기계판매를 위해 따로 회사를 차리고 콜럼비아사와 법정투쟁을 해
승리했다.
법정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회사이름을 빅터(Victor)라고 고친 것
이 1901년. 빅터사는 계속 기계를 제작해 그라마폰사에 수출했다. 빅
터사는 1903년부터 그라마폰사에서 녹음한 가수들의 음반을 수입
판매했다. 그라마폰과 빅터사는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세계시
장을 양분했다.
그라마폰사는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인도와 중동을, 빅터
사는 남북미주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각각 맡아 한국은 빅터회
사의 영역안에 들어갔다.
서로가 상대회사에서 녹음한 음반을 거의 자유로 복사할 수있어서
1904년 이전까지 그라마폰이 녹음한 카루소의 초기음반 22개와 1904년부
터 빅터가 녹음한 2백10개의 음반을 두 회사가 자유로 자기회사 레이블을
붙여 발매했다.
이 동반관계는 1929년 빅터를 흡수한 와 1931년 그라마폰과 유
럽의 콜럼비아가 합친 에 의해 1950년대초까지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