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아동심리학의 대가로 세계적 명성을 날렸던 미국의 브루노
베털하임 박사의 행적과 학문적 업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쏟
아져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지난 1990년 86세로 사망한 베털하
임 박사만큼 짧은 기간중에 존경받는 학자의 자리에서 협잡꾼으로 전락한
경우도 드물 것이라며 그간의 경위를 추적했다.
나치 독가스캠프를 2번이나 탈출한 경력을 갖고 있는 베털하임은
아동 정서장애치료의 대가로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마력의 사용법'
등 18권의 저서를 비롯해 신문기고와 TV출연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생전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5년여간 그가 대학에서 봉직하는 동안 그에게서 배
운 제자들이 '닥터 B'의 치료법 가운데는 체벌도 포함돼 있다고 폭로함으
로써 그의 명성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의 학술성과를 주의깊게 조사해 온 학자들이 베털하임의
학설 가운데 일부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도용한 것이며 그가 평소 밝힌
경력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
작했다.
베털하임은 자신이 20세기 심리학의 태두로 꼽히는 프로이트교수
밑에서 심리분석치료를 배웠다고 평소 자랑해 왔으나 두 사람이 만났다는
증거조차 없었다는 것이 후학들의 지적이다.
베털하임의 박사학위가 약학이나 심리학 분야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다 리처드 폴락저 'THE CREATION OF DR.B'가 서점가에 나오
면서 충격은 도를 더해갔다.
개인적으로 베털하임과 직접 접촉한 바 있는 저자는 빈
의 유태인 중류가정에서 출생한 베털하임이 근시에 신체적으로 허약했으
며 외모 콤플렉스를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에서 시달렸으며 부친이 매독으로 사망한 사실도 베털하
임에게는 평생을 통해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베털하임의 거짓말도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빈에서 자폐증에걸린 한 소녀를 치료한 경험이 자신의 학설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자랑하곤했다.
그러나 문제의 환자는 그의 첫번째 부인이 치료했다는 것이 폴락의
조사로 확인됐다.
또 베털하임은 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해 왔
으나 첫번째부인은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학설에 관해서도 오류는 여기저기에서 불거져 나왔다.
베털하임의 학설은 학문세계에서 요구하는 조직직 논리보다는 극히
제한된 경험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자폐증은 태어날 때 부터 타고난 문제라는 증거들이 압
도적으로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들의 자식교육 자체에 원인
이 있다는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고 폴락은 지적하고 있다.
타임은 베털하임이 아동심리치료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생전에 누렸던 명성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악
마와 같은 존재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