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령한 땅에 일군 `화엄 제1도장'...아직 신라의숨결 생생 ##.
「창업연대의 건축원죄」란 말이 독일엔 있다. 여기서 창업연대라 함
은 19세기의 70년대초를 가리킨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가 독
일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여 「카이저 제국」을 창업한 연대라는 뜻도 있으
나,그보다는 패전한 프랑스로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받은 독일에서 투기
욕이 불붙어 숱한 주식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창업된 연대라는 뜻으로 흔
히 쓰인다. 예컨대 1871년에서 72년 사이엔 프러시아 지방에만 780개의
주식회사가 새로 설립됐다 하니 창업 연대란 「주식회사 난립의 연대」라
할수도 있다.
돈 독이 오른 사람의 눈엔 돈 밖에 다른 것이 보일 턱이 없다. 소위
경제 제1주의의 정신적 황폐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도 모른다곤 할수 없
다. 바로 그러한 연대에 신축한 사무실 빌딩, 공장건물, 집단주택들의
꼴불견을 독일 문화사에서는 「창업연대의 건축원죄」라 일컫고 있다. 빌
딩은 한번 지으면 전쟁이나 나서 폭파해 버리기 전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원죄」처럼….
20세기의 한국…. 「빨리 빨리 산업화」, 「빨리 빨리 선진국」의 꿈을
좇는「아! 대한민국」이 펼쳐보여주고 있는 또다른 창업연대의 건축원죄!
경주를 여행하면서 그러한 개탄을 나는 마음 속에서 금할 수가 없었다.
경주만이 아니다. 우리 나라 어느 지방 어느 시골에 가 보아도 마
찬가지다. 「전원으로 간다」 「고향을 찾아간다」는 말이 풍기는 마음 설
레게하는 목가적 낭만은 이젠 한국 농촌에선 찾아보기가 힘들게 됐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도 그 추한 모양, 그 추한 빛깔, 그리고 무
엇보다도 그 추한 옥상 꼬락서니의 아파트 빌딩 몰골. 심지어 앞산과
뒷산이 무너지면 서로 덮칠 것만 같은 좁은 논두덩 사이에도 12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외돌토리로 서 있는 농촌도 있다.
전원파괴, 자연파괴, 균형파괴, 안정파괴, 인간파괴의 아파트라는
이름의 괴물. 대한민국에서 건설회사 난립시대의 건축원죄를 그 동안
온갖찬사를 다 바친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도 만나야 된다니….
그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 엄청나게 많은 건설회사들은, 그 엄청
나 게 많은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 엄청나게 많은 대학의, 그 엄청나게
많은 건축학과 출신들은 어디다 쓰고 또는 쓰지 않고, 지붕 모양 하나
고쳐보지 않으면서 30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꼬락서니의 보기 흉한 아
파트만을 판에 박은듯이 짓고, 짓고, 또 짓고 있는 것인지…. 이게 도
대체 어떤 민족이요, 어떤 민족의 후예란 말인지….
뿐만 아니라 경주엔 「역사」와 「역사」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고
속전철 「역사」의 잘못된 위치설정으로 자칫 「역사」도시 경주가 밀릴뻔
했던 것은 가까스로 역사를 먼 데로 돌려놓아 일단 한 숨을 돌리게 되
었다. 그러나 그도 잠깐이요, 이번에는 역사도시 경주가 도박꾼들의
마필이 「경주」하는 경마장 건설의 「역사」를 하네! 못하네! 하는 새 싸
움에 휘말려들게 되었다. 더욱이 이 도박꾼을 위한 경마장 건설을 하
필이면 가 나서서 「국민의 여가선용」이란 기막힌 명분 밑에
추진한다니 역사와 역사의 제2 라운드 싸움에서 경주의 운명은 불안하
기만 하다.
그런 경주를 다녀 온 뒤에 부석사를 찾는다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
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 의상대사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한 화
엄십찰 가운데서 제1 총본산격인 해동 화엄의 종찰 부석사. 이 부석사
에는 많은 덕이 있다.
「화엄」이란 동아시아에서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7∼8세기에 대승
경전인 화엄경에 근거하여 성립한 불교사상이다. 중국에서 이 화엄사
상의 종파적 기초를닦은 시조가 두순이고 그의 교학적 기초를 닦은 제
2조가 지엄이며 그를 최종적으로 집대성한 제3조가 현수대사라 일컫는
법장이다.
입당구법의 유학길 중도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간 원효와
는 달리 헤어진 의상은 혼자서 뱃가로 중국에 당도한다.산동성에 상륙
한 의상은 그 곳에서 선묘라고 하는 아름다운 처녀와 벌써 「국제 연애」
를,그러나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갈 길 바쁜 의상은 선묘와 헤어지고 장안으로 발을 재촉해
서 종남산 지상사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의상은 중국 화엄종의 제2조
지엄의 문하가 되고 화엄학을 집대성한 제3조 법장과는 문자그대로 동
문수학한 형제같은 동창관계가 된다.
중국에서 8년 수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화엄종의 이데올로기를 전국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수
많은 사찰을 세웠다. 부석사는 바로 그러한 해동 화엄의 제1도장으로
창건된 종찰이다.
그 터가 우선 좋다. 귀국 후 의상은 전국의 산천을 두루 편력한 끝
에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나 소도 접근
할 수 없는 곳을 찾아 「여기야 말로 땅이 신령하고 산이 수려하니 법
륜을 굴릴만 한 곳이다」』하면서 자리잡은 곳이 지금은 「소백산 국립공
원」안 봉황산 기슭의 부석사이다. 아직도 「건설회사 난립시대의 건축
원죄」가 소나 말처럼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만큼 한적한 곳이다.
「태백산부석사」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으로부터 불전까지의 참도는
한참 멀다. 그 긴 참도가 어지간이 속계의 먼지를 털어줄 무렵 안양문
의 누각 앞에 당도하면 먼 참배의 족고는 금방 보상 받는다. 불교나
화엄사상 같은 것엔 인연이 없는 관광객들에게도 부석사는 많은 것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직 신라시대가 남아 있다. 거석으로 축조한 석벽과 크
고 작은 면석을 섞어 쌓은 대석단. 절 입구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경내에 있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국보 제17호).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녹유를 발라
광택을 나게 한 신라시대의 기와 유품인 녹유전 등등….고려시대도 기
념비적으로 남아 있다.
금석 아닌 대부분의 문화유산이 거듭된 전란과 외침으로 거의 소
실돼 버린 가운데 부석사에는 7백∼8백년전의 목조 고건축물이 보존되
어 있다.
13세기에 재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이다. 그리고 그 위에 의상대
사의 진영을 안치한, 개수 연도가 고려 우왕 7년(서기1377년)으로 밝
혀진 조사당(국보 제19호).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로선 가장 오래
된 작품인 여섯폭의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또한 우리나라의 소
조상으로는 최대이자 최고의 것인,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고려
시대의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물론 조선시대도 참여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 누각인
범종루와 안양문. 그밖에도 원각전, 응진전, 선묘각 등등.
우리들의 20세기도 명함을 던져 놓고 있다. 2층 누각인 안양문 위
층의 처마밑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 이 가장 그다운 필
치로 휘호한 「부석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안양문에 이르기 전 대석단의 밑에서 봉황산을 배경으로 안양
루와 무량수전의 지붕을 위로 우러러보는 경관은 일품이다. 반대로 이
번에는 안양루에서 저 밑으로 「높고낮은 야산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한
결같이 화엄의 대가람을 향하여 읍하는 자세를」(한국불교연구원저 「부
석사」에서) 취하며 물결치고 있는 경관을 조망해보는 멋도 유현하다.
그러한 경관에 취해본 사람이라면 그 때, 우리 나라 전통건축의 아
름다움이 무엇인지 절로 몸으로 체득하게 될 것이다. 주변 환경에 아
랑곳없이 고답적인 허풍위세를 과시하는 중국 건축과는 달리, 또는 지
나치게 인위적인 양식화와 완성미를 추구하는 일본 건축과도 달리 『주
위 환경과 혼연일치되어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안정된 조화』(김정기
박사)를 보여주는 전통적인 우리 나라 목조건축의 아름다움…. 그것을
부석사는 보여 준다.
2차대전 후에는 유럽에서도 19세기식 「거대주의」(gigantism)를 탈
피하고 하우스 같은 대형 건물조차 요란스럽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주변건물과 조화되도록 지으려는 건축철학이 주류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축과 자연과의 조화를 찾은 1천여년의 문화전통
을 내팽개치고 「건설회사 난립시대의 건축원죄」에 도시와 농촌을 온통
내맡기고 있는 것일까.
그를 개탄하는 마음의 넋두리가 앞서다 보니 부석사의 아름다운
「선묘 설화」며 의상의 오묘한 일승법계도」등 중요한 얘기를 다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회에 만회해 볼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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