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더하우스 안채 출입엄금...자원봉사 현장은 인종전시장 ##.

【캘커타(인도)=최준석기자】.

『수녀님에게 필요한 것은 기자가 아니라,의사입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테레사 수녀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No
Photo, No Video」. 테레사 수녀의 거처이자 「사랑의 선교회」 본부인 마
더 하우스의 내부 촬영도 거부했다. 인도 캘커타의 도심을 남북으로
길게 가르지른 A J C 보세거리 54A번지의 마더하우스. 6차선 대로변에
있으나 입구는 골목으로 난 4층짜리 회색 이 건물은 외부인 출입을 엄
격하게 금했다.

이런 수녀들은 처음이었다. 「기자」란 말에 표정과 말에서 냉기가 돌
았다.

『에서 예까지 왔는데…. 해코지 하려는 것도 아니고.』 선교회 소
속 수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머니」(마더 테레사)의
바닥까지 내려간 건강으로 언제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조바심때문일
까.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헌금을 하고 싶은데요.』 테레사 수녀를 취재
하러 간다고 해서 친척들로부터 모금한 돈이 있었다. 그러니 문이 열린
다. 대문 안의 수녀원은 좁은 마당이 있는 바깥채였다. 백인과 인도인
등 방문객 몇명이 앉아 있다. 안채로 통하는 작은 나무문이 앞에 보였
다. 「수녀 외에는 출입을 금함」. 『테레사 수녀님이 어디 계실까. 저 안
에 들어가야 하는데….』 『따라오세요.』 흰색 사리를 입은 다른 수녀가
다가오더니 안채로 들어오라고 했다. 의외다. 전날은 못 들어갔던 문이
다.전날 자원봉사를 지원하러 왔었으나 요즘은 다른곳에서 받는다며 떠
밀리다시피 해서 나왔었다.

테레사 수녀가 위중해진 뒤 자원봉사 접수창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매일 저녁 6시에 테레사 수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리던 미사도 일
반 신자의 출입을 허용치 않고 있다. 테레사 수녀가 조용히 쉴 수 있도
록 하려는 배려인 듯 했다. 오전 7시 30분. 수녀원 안채는 밖에서 느낀
정적인 폐쇄성과는 달리 부산했다. 안뜰은 흰색 사리를 입은 예비 수녀
수십명으로 북적였다.

우물가에서 흰색 사리를 빨래하고, 양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기에 바
쁘다.

테레사의 후예들은 순결, 복종 등 통상적인 서원에 한 가지를 더해
야한다. 『가난한 이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에 봉사하겠다.』.

2층은 미사를 보는 방이다.헌금 담당 수녀가 나왔다. 약간은 부드러
워진 분위기를 틈타 물었다.

--테레사 수녀님은 건강이 어떠신지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몇 층에 계세요.

『1층입니다.』.

백인 수녀는 더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헌금에 대한 영수증을
받고 선교회를 나섰다. 마더 하우스 골목 앞이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인
다. 자원봉사의 첫날인 초년병들이다. 어제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들이
캘커타 시내에 산재한 사랑의 집으로 자신들을 안내해 줄 사람을 기다
리고 있다. 국적이 제각각인 젊은이들 10여명이다.

취재진이 택한 사랑의 집은 「프렘 단」. 환자와 노인들을 위한 수용
시설이다. 자원봉사가 아니면 현장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기자란 신
분을 밝히지 않고 가기로 했다. 30여분 걸어갔다. 프렘 단을 둘러싼 지
역은 빈민굴인 틸잘라이다. 카스트 제도상의 최하층인 회교도 지역. 회
교사원이 보이는 아스팔트 큰 길을 따라 인분이 즐비하다.

문닫은 화학공장 자리에 들어선 「프렘 단」에 들어가 남들처럼 앞치
마를 둘렀다. 병실 바닥을 물청소하고, 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를 빨래
했다. 수녀들은 자원봉사자의 직업, 이름을 캐묻지 않았다. 그냥 각자
알아서 일할 뿐이다.

병실 바닥의 물기를 비로 쓸어내고,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며 기자는
사방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현장을 머리 속에 담기 위해서다. 취재 수
첩을꺼내 메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조용히 일하는 속에서 혼
자서 끊임없이 해해거리며 옆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어디서 왔어
요. 왜 왔습니까.얼마나 됐지요….』.

그러나 수녀들의 눈길을 피해 셔터를 누르던 이병훈 부국장은 끝내
일을 당했다. 사진을 찍고와 시침떼고 빨래칸에서 옷의 물기를 쥐어 짜
고 있던 그는 『당신, 이리와』(You, Come)이란 말과 함께 수녀들에 의해
끌려 갔다. 그렇게 무서운 수녀는 처음봤다. 『사진을 왜 허락없이 찍느
냐』 『필름 내놓아라』는 말과 함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혼쭐났다. 필름을 뺏길 위기를 끝내 버티고 우리는 현장에서 추방됐
다. 그리고 또다른 자선봉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왜 기자들의 취재를 이렇게 꺼리는가?』
『이 일은 남에게 알리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랍니다.』.

가장 낮은 곳의 가장 고결한 「성녀의 분신들」은 『봉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취재하겠다고 나섰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