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한민족은 금세기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위기국면을 맞고
있는 듯하다.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치지도자, 혹은 특정기업만이 위기
국면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한반도라는 공간과 그속에서 생존해온 민족
전체가 온몸으로 세기말의 불안감을 체험하고 있다. 비록 원인과 양상
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남과 북은 때마침 권력이전기에 동시에 바닥경기
에빠져들었고, 남-북간의 세력균형 상실로 인해 민족 전체의 촉감이 예
민해졌다. 는 창간 77주년을 맞아 「한국의 어제와 오늘,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주제로 원로 좌담회를 가졌다. 우리시대 문제에 대
한 원로들의 진단과 해법은 과연 무엇인가. 좌담에는 전부
의장과 남덕우-노신영 전국무총리가 참석했다. .
## 4류정치에 경제도 안보도 대실패... 과소비-고임금이 문제 ##
## 중산층대변 정치세력 있어야...여당도 야당도 온통 비빔밥 ##
## 대통령 남은임기 새일보다 정리를...한보의혹 철저 규명을 ##.
▲고전부의장=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습니다. 정치는 4류로 떨어졌
고, 경제는 어둡고, 안보도 대실패입니다.국민들은 기력이 없고 앞길이
컴컴해 희망을 잃었습니다. 민주화는 말뿐이고, 3김이 패싸움하다 마는
꼴이 돼버렸습니다. 노동법 날치기 통과가 대표적 예입니다. 여-야간에
몸싸움을 하더라도 토론을 하고, 법의 취지를 국민에게 알릴 수 있도록
여당이 성의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없었어요. 대통령이 「연내 통과
시켜라」 하니까 새벽에 나와 내용이 어떤지도 모른체 날치기를 하니 국
회는 폐허가 되고….이런 모습을보이고 어떻게 문민정부라는 소리를 들
을 수 있습니까. 물론 야당도 잘못이예요. 싸우더라도 내에서 싸워
야지, 부의장을 음식점에 가둬다 놓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남전총리=그걸 보고 느끼는 것은 민주화 하던 분들이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방편으로 민주화를 내걸었는데,과연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신
념이 있느냐,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는 점에 대해 국민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당도 1인이 지배하고, 도 날치기가 그대로 있
고,력과 세무사찰도 본래 목적 이외에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우리 민주주의가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전총리= 해법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정
치뿐 아니라 안보나 대북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북한 정책은 역시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그럼 기본이 뭐냐. 우리의 내부결속과 경제성장,
국방력의 충실 등을 들 수 있겠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여-야를 포함한 국민들의 컨센서스가 이뤄져야 한다
는 점입니다. 이런 기본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컨대 북한에 쌀을 줄까 말
까, 잠수함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 하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게 됩니
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경제가 안되고 군인의 사기는 떨
어져있고,무엇보다 대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습니까.김
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는 「김주석을 내가 먼저 만나겠다」며 서로 경
쟁을 했지요. 김주석이 사망하니 이번엔 조문을 할것이냐 말것이냐를 놓
고 내부 혼선을 일으켰습니다.그러다 보니 여-야가 갈리고, 정부의 운신
이 달라지고…. 이렇게 되면 문서로 만들어진 대북정책은 사상누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부결속이 안되니 사사건건 대증요법을 취할 수밖에 없
고,미국-일본등 우방들도 한국의 대북정책의 기본에 대해 오해하고 의심
하게 되는 거지요.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 북한이 넘볼수 없는 국방력을
키우고, 여기에다 국민적 컨센서스만 갖추면 대북문제의 많은 부분은 달
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남= 컨센서스, 즉 국민적 합의는 있다고 봅니다. 통일을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데는 국민들 사이에 이의
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실체를 냉정히 파악하고, 그
실체에 맞는 일관된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지금까지는 통일된 방향이 서
지않아 방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즘은 김대통령도 확고한 방향을
잡은 것 같고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고=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 내 나름대로 그 원인을 곰곰이 생
각해보면 김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 큰것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통령 취임 후 몇차례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
어요. 그런데 내가 야당하던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싫은 소
리를 자꾸만 하게 되더군요.그러니까 더이상 만나자는 연락이 없어요.김
대통령이 자기 측근이나 가신의 얘기만 듣는게 문제입니다. 여론을 폭넓
게듣고 그 얘기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데,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싫어하니 누가 가서 올바른 얘기를 해주겠어요. 날 보고 여러
사람이 「대통령 만나면 싫은 소리 하지말라」고 충고하는데, 아니
에 밥먹으러 가는 겁니까. 사회 각계각층과 폭넓게 만나면서 의견을 들
었으면 오늘날 이런 사태는 안 벌어졌을 겁니다. 내가 신문에 칼럼 같은
것을 자주 쓰는 이유도 사실은대통령이 읽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게 민심이오, 진짜 여론을 알고국정에 임해주시오, 이런 뜻이에요. 그런
데 대통령은 신문도 안보는 것 같아요. 대통령 주변에서도 「잘 되고 있
습니다」라는 입바른 소리 일색이니….
▲남= 덧붙여서 말씀드린다면 대통령께서 언론을 너무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자주 TV에 비치는데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서관회의를
공식화시키지 말고 내각을 가동시켜야 합니다. 항간에서는 「내각이 무력
화됐다」 「수석비서관과 외부 몇사람이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얘기가 많
이 나옵니다.
▲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묘안이 안떠오릅니다. 정치뿐 아니라 경
제도 문제지요. 과소비가 판을 치고…. 천장이 무너지는데 집안에 있는
사람은 그걸 못보고 사치풍조에만 열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 그렇습니다. 정치나 안보는 물론 경제까지 나쁘니까 평양에 좋
지 않은 신호가 갈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한층 더 걱정입니다. 사실 경제
를 일조일석에 기사회생시키는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경제난의 성격
이 구조적인 만큼 일조일석에 취약점을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경
제난 해결의 핵심은 뭐냐. 지금 우리 경제는 실력에 걸맞지 않는 임금과
소비수준이 가장 문제입니다. 개방화-민주화로 노조가 활성화돼 우리 경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지탱할수 없는 급여수준을 갖게 됐습니다. 급여가
오르니 소비수준도 덩달아 높아지고. 실력도 없는데 거품만 생긴거죠.이
게 문제입니다. 국제수지 악화는 그 당연한 결과인 셈이지요. 본연의 위
치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한국경제의 실력에 맞는 급여와 소비수준을 유
지하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착실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민심
을 어떻게 규합할 것이냐가 결국 관건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시 정치문제
로 되돌아가네요.
▲고= 과소비는 사실 실명제 원인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명제 때문
에 파묻혔던 돈이 큰 뭉치는 해외로 빠져 나가고 나머지는 쏟아져 흥청
망청 쓰여지고 있는 겁니다. 경제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우선 한보문
제부터 명명백백히 밝혀야 합니다. 안밝히면 2탄, 3탄, 4탄이 자꾸 쏟아
져나올 겁니다. 도대체 5조원 가까운 돈이 어떻게 같은 인물에게
대출됐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부의 설명이 없습니다. 떡값도 중요하
고 돈 먹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부차적 문제입니다. 어떻게 정부가
의혹투성이로 인허가를 내주고, 거액이 나갔는지 도대체 국민이 납득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국민이 납득할수 있는 설명이 있었으
면 좋겠어요.
▲남= 한보문제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 정치적 비리의 문제와 경제
적인 문제입니다. 과거엔 이런 사태가 터지면 은행감독원이나 국세청에
의뢰, 문제기업의 재산상태를 우선 파악한뒤 경제장관회의에서 처리방안
을 마련하고 그다음 수순으로 부정이 있으면 이 수사를 하곤 했습니
다.하지만 이번엔 비리 수사만 앞설뿐 정부가 한보사태의 실체조차 제대
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불안이 더욱 가중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토대로 처리방안을 빨리 마련해
야 합니다. 또 이번 기회에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
다.성업공사같은 것을 만들어 각은행의 부실채권을 한군데로 다 몰아 정
리해 나가고, 은행의 재무제표는 깨끗이 털어버려야 합니다. 빨리 서두
르지 않으면 금융 전체가 문제되고 대외신용도가 떨어져 아주 위험한 사
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노= 경제뿐 아니라 외교도 마찬가지인데, 중요한 것은 내각에 무게
를 실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각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
어줘야합니다. 외교문제면 외무장관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일을 하고,내
각의 책임을 분명히 해줘야 합니다. 요즘 비선이라는 단어가 자꾸 나오
는데, 내각 밖의 라인에서 일을 다루면 책임소재가 없어지게 되죠. 그러
니까 우리 내부 뿐만이 아니라 미국일본 중국 등에서도 한국의 누구하고
상대해야 하느냐, 이런 묻지 않아도 될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대외문제
는 외무장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 비선조직은 있더라도 왈가왈
부하지 않고 자문에만 응하도록 해야 합니다.특히 민감하고 복잡한 대외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발언을 자제하고, 안 나와주었으면 합니다.외
무장관과 총리 선에서 해야 나중에 방침을 바꿀때도 여유가 생기는 법입
니다. 대통령이 많이 알더라도 먼저 발언을 해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
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아직 11개월의 임기가 남아있는만큼 허
송세월해서는 안됩니다. 새 내각에 힘을 많이 실어줘 열가지 과제가 있
다면 두세 가지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 경제운용방식의 커다란 전환이 필요합니다. 외교도 비슷한 상황
이라고 말씀하셨는데,경제정책도 너무 단편적인 대증요법 중심입니다.물
가대책을 세우라고 했다가 국제수지 대책으로, 불경기 대책으로 중심이
자꾸 옮겨가는 식입니다. 경제는 큰 틀이 있어야 하고, 그 틀을 튼튼히
지켜가야합니다. 공공요금 동결이다, 특별자금 방출이다, 해외여행 제한
이다 불쑥불쑥 특단의 정책이 튀어나오니까 경제의 틀이 일그러지는 것
이죠.옛날엔 그래도 이런 방식이 통했지만 문민정부가 돼서도 그대로 답
습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웬만한 것은 중앙은행에 넘기고 정부는
정치적-사회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주력해야 합
니다. 노동문제를 예로 들면 장관은 노조도 만나고 의원도 만나고,
국민들을 설득해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이끄는 방식
이 필요합니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고= 대통령이 행정을 전문가에 맡겨야 하는데 가신, 그것도 몇몇 사
람에게만 맡겨온 게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외교 안보 경제 모든게 실패
입니다. 시골에 갔더니 누가 『정치 9단이라고 하는데 알고 봤더니 9단이
아니라 9급이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지 말고 어떻게 정리를 해서 마무리를 잘
하느냐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남은 임기동안 김대
통령이 당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파에서 초연한 입장에
서국정을 마무리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대 대통령이 다
말로가 비참하지 않았습니까. 야당도 한보사건의 책임을 절대 면할수 없
습니다. 씨한테 철강사업허가가 난 날부터 문제를 삼았어야지, 지
금까지 국정감사 때는 왜 가만히있었습니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미연
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야당 책임입니다. 국가가 엉망진창이 된 다음에
떠들면 무슨 소용입니까.
▲남= 결국 지도자를 잘 만나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수 있겠지요. 누
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명백한 플랜을 밝히는 그런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습
니다. 특정사안에 대한 대책을 따지는등 언론이 대선에 나서겠다는 정치
인들의 자질을 심도있게 추궁, 걸러야 할 것으로 봅니다.
▲고=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결국 국가의 운
명은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입니다.
▲노= 정치를 해보지 않은 제가 보더라도 야단났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수없을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허탈감에 빠져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암만 힘들어도 지도자를 믿고
힘을 합치면 이겨낼수 있다는 신뢰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4천5백
만이 화합해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국민적 단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국
민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갖춰줘야 합니다. 문제는 지금
의 지도자와 정치권이 국민에게 그런 희망의 원천이 될수 있느냐 하는 점
인데…. 새 내각 아래서 남은 임기동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다음 정
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또 해나가고 하면 됩니다. 어느 한 대통령이 5년
임기동안 기사회생을 시켜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리입니다.
▲남= 현재 보수 중산층을 대표해서 정치를 이끌어가는 정치 집단이
있느냐 하면 분명치 않습니다. 정치를 움직이는 중심세력이 없다는 얘기
지요. 그러니 불안할 수 밖에요. 민주사회는 다원사회이니까 가치관도 다
른 것이 당연하겠지만, 안정된 보수 중산층의 가치를 대표하는 정당이 있
어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동시에 정계가 개편돼야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계개편의 가능성은 어떤가요.
▲고=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요. 저도 지금이야
말로 정계개편을 해서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로 구분을 짓고 각 당파
에 분명한 색깔을 입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여당이고 야당
이고 온통 「비빔밥」 아닙니까.
▲남= 선거전이 철학이나 정책대결이 아니라 다른 측면의 비정상적인
대결로 돼버린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고= 그래요. 사실 지금 우리 선거법은 돈을 못쓰게 돼있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다 몇십배, 몇백배를 쓰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돈을 써야 표를
찍어준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는 것이지요.
▲남= 결국은 국민에게 달렸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주관부터 세워야 합니다. 자기 주관에 따라 지도자를 뽑아야
지, 돈먹고 표를 준다, 지연-학연을 보고 찍는다 이렇게 되면 정말 국민은
그 죄값을 하는 정부를 갖게 되는 겁니다.
▲노= 그래서 2차대전후 1백여개 국가가 독립했고, 대부분 서구 민주주
의를 모델로 삼았지만 선진국이 된 나라는 아직 없는것인지도 모릅니다.결
국 국민수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내 한표를 돈하고 바꿔서는 안된다는 상
식이 일반화돼있지 않으면 서구식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것입니다.수천억원
씩 쏟아붓는 선거를 대통령-의원-지방선거 때마다 해서 되풀이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지금같은 정치행태,경제적 주름살이 올
정도로 돈이 낭비되는 선거풍토는 확실히 큰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남= 인사나 정책결정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인사 문제를 예로 들
면 대통령의 통치이념이 뚜렷하면 (인사)기준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대통
령이분명한 기준을 세워 자신의 정책방향에 맞는 사람을 기용해서 써야 되
겠죠. 앞으로 새로 뽑힐 대통령이 과거 국가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물
이라면 (사람에 대해) 잘 모를거예요. 그럴수록 여러 사람들과 널리 접촉
해서 물어도 보고 중지를모아 사람을 골라쓰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겁니
다.
▲고= 훌륭한 대통령이란 원리원칙이 확고하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고,
일 본위로 나가지 않으면 안돼요.그런데 지금 보면 인사를 하는데 무슨 고
사떡 나눠주듯 합니다. 여기도 하나 주고, 저기도 하나 주고. 그래선 안돼
요. 내가 인사권자라면 불안해서라도 그렇게 못해요. (능력없는 사람을 썼
다가) 무슨 사태가 벌어지라고. 나는 김대통령이 원내총무를 할때 사무총
장을 하면서 같이 야당생활을 했던 오랜 동지인데, 문민정부의 인사스타일
을 보고 너무 실망했어요.
▲남= 이번 개각으로 총리가 6번째가 되죠. 요즘들어 모든 권력이 대통
령 한사람에게 집중돼있는 정치체제가 위험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어
요. 대통령이 잘 해주면 좋은데 잘못하면 이게 큰 일이란 말이에요. 이런
정치제도를 어떻게 손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나는 그래도 끊임없이 사정과 개혁을 추진해온 김대통령의
용기에 대해 박수를 쳐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정리를 해줘야 할 때입니다. 지금 보면 정치인이고, 기업인이고 과거와는
무관한 「결백한」 섹터(분야)는 아무곳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
선시대 영조가 성분과 과거를 불문하고 인재를 등용했듯이 탕평책을 다시
한번 써서 경제계의 분위기를 일신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 동감입니다. 김대통령이 남은 기간에 할 일도 과거와의 매듭을
지어주는 일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허송세월만 하면 다음 대통령과
정권에 큰 부담을 줄 것입니다.
▲남=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는 자유롭고 풍
요로운 사회라야 할것입니다. 통일이 눈앞의 문제로 다가오고 우리가 북한
을 끌어안아야 한다면 민주와 자유라는 우리의 이념은 더욱 확고하게 지켜
져야 합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인 재무장이 필요합니다.나는 우리 국민성의 약점을 4가지로 봅니다. 남을
믿지않고, 협력하지 않으며, 정직하지 못하고, 힘이 있으면 남용한다는 점
입니다. 이런 약점을 하루 빨리 뜯어고쳐야 합니다. 앞으로 나올 대통령은
때가 묻지않고 이런 국민성 개조운동에 솔선수범할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
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대통령이길 바랍니다.
▲노= 공무원의 복지부동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공무원이란 월급 한
두푼 올려주는 것보다는 프라이드를 살려줘야 비로소 신나서 뛰는조직입니
다. 정권이 바뀌어 외부인사가 (낙하산 인사로) 고위 공무원에 기용됐다고
칩시다. 이 외부인사에 대해 공무원들이 「벼락감투는 썼지만 자질은 있다」
고 수긍하면 그 인사는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공무원들이 납득을
못하면 그때부터 관료조직은 움직이질 않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확실한
원칙과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고= 맞습니다. 내가 야당 시절에 알던 어떤 인사가 문민정부 들어서
자 국영기업체의 장으로 임명됐는데, 이 사람은 기업경영이란 전혀 모르고
어디다 도장 찍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동안 (야당생활을 하면
서) 같이 고생했던 인연도 중요하겠지요.하지만 과거 고생은 고생이고, 그
것은 따로 평가를 해줄 문제이지 개인적인연이 인사까지 좌우되는 것은 곤
란한 일이지요.
▲남= 일본은 직업관료제가 확립돼 인재경영이 축적돼있습니다. 정치는
국가운영의 기본만 관여하고 통상적인 운영은 직업관료가 맡지요. 하지만
한국은 정치와 경제, 행정이 하나가 돼 두루마리 식으로 움직입니다. 굳이
내각책임제가 아니더라도 통치권자의 의지만 있으면 직업관료 시스템도 잘
발휘될수 있습니다. 과거 대통령은 「장관은 내가 임명하지만 차관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쓰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말 그대로 실천했습니
다. 차관은 장관이, 국장은 차관이 일 잘하는 사람을 골라 쓰니 공무원 조
직의 질서도 유지되고 효율성도 발휘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장관
이 들어와서 조직의 인사를 뒤흔들어 놓곤 합니다. 공무원이 일할 맛이 안
나는 거지요.
▲고= 효과와 인기를 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선전 효과를 먼저 생각하
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고 해서 국민
이 따라와주진 않습니다.한번 같이 뛰어보자는 느낌을 주어야만 국민도 따
르는 것입니다. 국민과 공감대가 중요한 것이지요. 지금 정권은 보안 결벽
증에 사로잡혀 이것도 보안, 저것도 보안 하는데 그래서야 국민의 공감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노=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각종 문제점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이
걸 언제 다 풀어가나 하고 한숨마저 나옵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한두
가지만 풀리기 시작하면 나머지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
이 무어냐 하면 사회의욕을 높여주고 부패를 추방하는 일입니다.국민이 신
이 나도록 해줘야 합니다. 오늘은 힘들지만 내일은 좋아진다는 희망, 우리
세대는 어렵지만 자식 세대는 살만할 것이란 희망을 국민이 가질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일반인식이 틀렸음을 다들 깨닫
게 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만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풀려나가게 돼있습니
다. 반대로 정부가 이것을 해결 못하면 전반적인 사회문제가 단 하나도 해
결되지 못한다는 얘기도 됩니다. 현 정부는 남은 11개월의 임기동안 이 두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남= 저는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해야 할 일은 딱 세가지라고 생
각합니다. 우선 노동법 개정문제입니다. 노동법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국제
경제전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느냐에 대한 원칙을 지
켜야 합니다. 노측만이 아니라 사측도 공평하게 국제수준에 맞춰야 합니
다. 이번에 노동법 개정이 어떻게 되느냐는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
입니다. 두번째는 금융개혁입니다. 금융개혁하면 흔히 은행의 원가를 절감
해 금리를 내리자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선진국처럼 누가 뭐래
도 거시 경제정책의 틀을 움켜쥐고 든든히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
들어야 합니다. 이게 중앙은행이 할 일입니다. 전후 독일의 경제부흥도 독
립적인 연방은행의 노력에 힘입은바 크고, 세계적 추세도 중앙은행의 독립
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교통대책인데, 국민들한
테 지금 문제는 무엇이고, 정부는 어떤 해결노력을 하고있고, 앞으로 몇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백서나 청사진을 보여주고 좀 참자든지, 설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우리 국민은 워낙 저력이 있어 정부가 실마리만 풀어주면 국민들
이 분별심을 발휘해 위력적인 에너지로 발휘될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무에
서 유를 창조한 60년대, 70년대의 찬란한 개발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고비
마다 역경을 이겨내온 민족인 만큼 저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