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한 복판 중구 태평로1가엔 붉은색 벽돌건물 하나가 서 있다.
구리지붕에 아직 푸른 녹이 슬진 않았지만, 오늘로 창간 77주년을 맞은
의 심장부가 모여 있는 집이다.

논설위원실은 7층짜리인 이 건물 6층에 있다. 매일 오후 2시
한국의 신문독자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 있을 사람들이 사설과 칼럼
을 정하기위해 여기에 모인다. 이 현장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이미
계량화돼 있다.

96년 10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한국의 전문가집단 1천여명을 대
상으로 「언론사주를 제외하고 현재 신문 방송 잡지에서 활약중인 가장 영
향력있는 인물」을 설문조사했다. 주필이 1위, 류근일 조
선일보 논설주간이 5위, 홍사중 논설고문이 9위였다.

조사대상자들중 무려 19.7%나 되는 사람들이 김주필을 「가장 영향력
이 있는 언론인」이라고 응답했다. 2위 언론인(방송앵커)에 대한 응답률은
8.0%였다. 「활자매체의 현직언론인」만을 따질 경우엔 김주필, 류주간, 홍
고문 세 사람은 1,2,3위가 됐다. 이들과 나란히 논설고문과 최청
림 논설위원실장이 앉는다. 「저널리즘 한국학」을 창립한 이고문과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논객 최실장을 모르는 신문독자 또한 없다.

이들 다섯 사람이 에서 자기이름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 칼럼
니스트들이다. 자기 이름의 칼럼을 갖는다는 것은 햇병아리 기자들이 신
문사의 문을 들어설 때 누구나 품는 큰 꿈. 5인의 칼럼니스트들
이 글과 비판정신으로 나름의 일가를 이루었다는데 사의 다름을 떠나 이
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은 가치있는 칼럼을 존중해온 우리 언론계의 이같은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는 이들 다섯 사람으로 대표되는 논설위원
실의 무게가 곧바로 한국신문의 무게에 비견할 만하다고 자부한다. 이것
이 자화자찬만은 아닌 것은 한 세대에 한두명 있을까말까할 논객들이 한
꺼번 5인씩이나, 그것도 같은 신문에서 글을 쓰게된 것이 결코 우연일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수구와 극좌를 배격해온 의 분명한 컬러는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며, 의 흔들리지않는 바로 이 전통이 이들
다섯사람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렇다하더라도 저마다 강렬한 개성의 소유
자들인 이들 5인의 집결은 하나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전공부터가 모두
다르다.

김주필은 법학, 류주간은 정치학, 최실장은 경제학, 이고문은 이학,
홍고문은 사학을 각각 공부했다. 논리적이고 직선적인 글을 쓰는 김주필
은 법학도의 전통적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정치를 공부하고 보고
평하는데 생의 대부분을 바친 류주간은 유명한 이념논객으로서의 날카롭
고 재기에 찬 면모가 체취에까지 묻어나는 사람이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제기자로 평생을 보낸 최실장은 거의 본능적으
로 경제학도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한국인의 원형질까지를
파고들어가는 이고문의 이학적 개성이나 역사학도이자 문필가인 홍고문의
개성도 유별나다.

각자의 필치도 전공만큼이나 다르다.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는 직선」이란 수학원리는 김주필의 글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다. 그는 쓰
고자하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쾌속으로 나아간다. 이 직선의 미학이야
말로 김주필을 당대 제일의 논객으로 만드는 개성이다. 독자들은 김주필
이 그어놓은 굵은 직선을 타고 함께 내달리며 글읽는 통쾌함을 만끽한다.

류주간의 글은 잘 둔 한판의 바둑과도 같다. 그의 글엔 수십수 앞을
내다보고 포석한 고수의 돌들이 하나의 질서있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바
둑의 미학이 담겨있다. 치밀한 수순에 따라 배치된 사회과학의 개념들은
종국엔 분명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 정치한 그림을 보며 독자들은 흥
분하기 보다는 생각하게 된다.

경제엔 허장성세가 통하지 않는다. 그 세계를 다루는 최실장의 글은
냉정하고 실질적이다. 그의 글에서 미사여구는 찾아볼 수 없다. 형용사도
몇 개없다. 마치 링위에선 피터지는 싸움이 벌어지고 흥분한 관중들은 아
우성인데, 깐깐한 심판이 그 열기엔 아예 관심도 없다는 듯 선수의 규칙
위반을 얼음처럼 집어내는듯 하는 것이 최실장의 글이다.

홍고문의 글은 강한 사각형이 아닌 둥근 타원형들로 채워져 있다. 거
기엔 홍고문의 이야기보다 선인들의 얘기가 더 많다. 홍고문이 동서와 고
금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그 역사를 순리대로 엮으면 그대로 살아있는 오
늘의 교훈이 된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던지는 통찰은 별개로 하고라
도 활자의 매력에 빠져드는 재미가 각별하다. 한국 최고의 이야기꾼 반열
에 오른 이고문의 독특한 필치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이처럼 뚜렷한 개성의 5인이 무대 한 곳으로 모이게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나라사랑하는 생각과 방법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선 수구세력에 반대했다. 김주필은 85년8월 「민주화의 대도로 가지 않
으면 민정당은 돌격앞으로의 병졸들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류
주간은 87년 4.13호헌조치때 「국민의 개헌여망을 실망시키지말라」고 정
권내 수구세력에 직격탄을 날렸고, 최실장은 89년6월 「시대를 거역하는
재벌」에서 기득권 세력에 경종을 울렸다. 이들은 목이 쉴 정도로 북한의
야욕과 친북세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거듭했다.

「지성이 숨쉬는 사회, 그래서 건강한 사회」도 이들의 공동목표다. 김
주필은 「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96.2)라는 칼럼에서 「일본 지식인은
가 한국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랬다간 뼈도 못추릴 것이다.」
라고 우리 사회의 반지성 분위기를 비판했다. 이는 다섯 사람 모두의 목
소리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들은 용기있는 칼럼니스트들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권위
주의가 언론을 누르던 80년대, 신문칼럼은 곧 용기였다. 이들 5인은 이런
칼럼의 시대가 만든 스타들이다.

김주필은 84년11월 광화문지하도에서 신문의 톱기사는 무시한 채 1단
짜리에 빨간줄을 쳐서 파는 사람들을 소재로 「거리의 편집자들」이란 유명
한 칼럼을 썼다. 그는 「우리는 오늘도 거리의 편집자들에게 졌다. '저 친
구들 잘도 뽑아낸다'면서 히죽히 웃을 수밖에 없는 마음 속에 쓰디쓴 느
낌이 가라앉는다」고 언론상황을 자조했다. 그는 연속적인 비판적 칼럼으
로 정권의 미움을 사 86년10월 본의아닌 영국행을 해야했다. 홍고문도
「언론과 비어」 (86.4)에서 「헌법에서 언론자유는 이리 찢기고 저리 뜯겨
누더기가 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어김없이 신문의 날이 돌아오고 자유니
사명이니 하는 번드르한 축사들이 여기저기서 들릴게 틀림없다」고 비판했
다.

류주간은 85년 2.12총선때 쓴 「정치대중의 부활」에서 「그것은 폭발이
었다. 동장군도 간통스런 TV도 아마 놀랐을거다. 그렇게 정치에 무관심하
라고 다 축구다 별의별 쇼거리가 다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의 마
음속엔 정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꺼지지 않았다」고 환호했다. 우리나라
에서 대통령 비판은 쉽지않은 일. 최실장은 「장관이 지게된 대통령책임」
(89.6)에서 「노대통령 스스로가 평소에 우유부단하다가 경제가 어려워지
자 장관들을 문책하겠다고 발표하는 것만이 결코 능사는 아닐 것」이라고
정면으로 공박했다.

이들 다섯 사람의 칼럼니스트들이 창간 77주년에 독자들에
드리는 인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일 듯 하다. 「제발 말 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지도층인사들이 눈치보지않고 할 소리를 하고, 그래서 모두 한쪽
으로 몰려가다가도 한번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게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눈치를 볼 곳이 있다면 그것은 나라의 장래뿐이다.」.
(김주필·말안하면 본전인가·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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