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력 교체 맞물려 큰 폭으로 전개될듯… 지식인 이반 가속 ##.
황장엽 망명 사건 이후 북에선 머지않아 「피의 숙청」이 시작될까, 아
니면 이미 진행중인 것일까. 황장엽 망명 사건 직후 해임된 것으로 최
근 확인되고 있는 강성산 총리의 의문의 퇴장, 지난 2월21일 사망한 최
광 인민무력부장의 장의위원 명단에 드러난 군부 약진과 당비서진의 상
대적 지위 약화, 전문섭 국가검열위원장 등 특정인사들의 전면 부상….
지난 2월12일의 황장엽 비서 망명 사건 후 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배경과 원인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문부호가
잇따르고 있다. 과연 황장엽 망명 사건이 불러온 「피의 숙청」의 전주곡
일까.
●강성산 해임도 피의 숙청 예고편.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황장엽 망명 사건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
한 정권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사용하던 수법 그대로 대규모 숙청
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이항구씨는 『황장엽
사건의 본질은 권력 이동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외 그룹의 움
직임 중 하나』라며 『강성산 해임 등은 황장엽 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
은 것으로, 북한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당사상을 점검, 위험 인물을 골라
내는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사망과 강성산 총리 해임 등 김일성 체제
에서 김정일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빚어진 권력 핵심부의 「유고」는
황장엽 사건의 숙청과 맞물려 세력 교체의 폭과 범위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황장엽 망명사건은 북한 정권의 지도부와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쇼크를 던져준 「해방이후 최대 이반 사건」. 황장엽은 김일성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확립한 「대부」이기 때문에 그의 망명은 북한 지
식인은 물론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사상적 동요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특히 황장엽은 망명뒤 『서열 20위내 6∼7명이 한국 망명을 원하고 있
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신영석 평화문제연구
소장는 『북한은 올 7월 김정일 체제 출범을 앞두고 「제2의 황장엽」이
될 6∼7명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현 지도부에 대한 전면적인 사상 검
증 작업과 이에따른 숙청 작업을 계속 벌일 것』이라며 『체제 정비가 된
후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석 소장은 『특히 군부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대폭적인 수술을 통해 정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큰 반발에 부딪치
지 않고 숙청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우선
적으로 숙청대상으로 황장엽의 직계나 총장 재직시 수제자 등 당·정·
군과 각계에 포진해 있는 이른바 「황장엽 학도」들을 대거 정리할 것으
로 내다봤다. 강성산 총리해임도 이런 개방파적 지식인들이 숙청될 조
짐을 보이는 것으로 앞으로 상당한 고위 관료들이 숙청 대상이 될 가능
성이 크다는 것. 결국 이 문제는북한이 김정일 체제로 전환을 쉽게 이
루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북한내에 존재하는 파열음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 신 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이번 숙청 파문이 빨리 해결
되면 그만큼 빨리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북한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고위층에 「미제 간첩」이
나 「종파 분자」로 모는 경우가 많았다』며 『황장엽도 「미제 간첩」으로
몰아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파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관
측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개될 숙청에 대해 56년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일
어났던 「8월 종파 사건」과 77년 일어난 김동규 부주석 숙청 사건의 전
례를 들고있다. 56년 당시 중공업 위주 정책으로 경제난이 심해지자
상업상이던 윤공흠이 반발, 비판을 하자 김일성이 윤공흠과 친한 김일
성대학 총장 등 간부급 80여명을 종파분자로 몰아 숙청한 적이 있다.또
한 77년 김정일에 반대하는 음모가 적발되자 김동규 부주석 등에게 죄
를 뒤집어씌어 인텔리들을 대거 숙청했다. 당의 이론, 군 기술 작전 보
급, 정권기관의 경제 부문 등 핵심 역할을 하는 인텔리 간부들이 대거
숙청한 것이다. 황장엽 망명 사건도 결국 이런 식으로 속죄양을 만드는
숙청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전문섭 국가
검열위원장의 서열을 15위로 올려놓은 것은 체제 단속에 힘을 기울이겠
다는 김정일의 의지 표현으로 해석했다.
방찬영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 경제특보도 『김정일도 북한에 황장엽처
럼 경제통 중에 수정주의자나 기회주의자가 많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며 『7월 김일성 3년상을 마치기 전까지 숙청 작업을 마무리 할 것』
이라고 내다보았다. 숙청은 대략 세 가지 방법으로 기회주의자나 우경
주의자로 몰아 해임시키거나 대상자들을 소개시켜 함경도나 자강도로
추방, 그리고 숙청시켜 총살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숙청 가속화되면 가혹한 내부 통제로 체제 공황 우려.
그러나 이런 숙청이 가속화되면 그에 비례해 「반동세력」이 확대되고
체제유지를 위해 무자비한 통제를 일삼는 체제 공황 상태까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특히 최광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나타난
군부의 득세는 체제 내부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군부
에서 전면 부각된 인물은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현철해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 선전선동부장, 김하규 포병사령관 등은 군부
에서 알아주는 강경파 그룹. 이와 함께 이종옥 박성철 김병식
부주석들의 퇴진 및 영향력 감퇴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온건 개방파
몰락과 함께 군부 강경파의 득세는 지식인 사회의 이반과 위축을 가져
와 해외 대사관 직원들의 망명 등 탈출 기회가 생기는 지역에서는 연쇄
망명 파문까지 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방찬영씨는 북한은 황장엽 파문
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체 사상을 퇴색시키고「붉은 기」 사상을 통치이념
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정영태 연구위원은 『황장엽 사건은 김정일 주석 승계
과정에서 튕겨져 나온 것으로 제한적으로나마 개방한 상태에서 필연적
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며 『그러나 이 사건으로 개방파 모
두를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우처럼 실무형
은 계속 체제 유지를 위해 김정일 주위에 포진시키고 누구라고 꼭 집을
수는 없지만 실제 일은 하지 않으면서 큰소리만 내는 이론가들을 대상
으로 체제 정비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진단이다. 나진·선봉 등 경제
특구를 성공시켜 회생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개방파와 보수파가 조
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피의 숙청」으로 일대 파문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
망에 대해 일부에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
시성 전 남북대화사무국장은 북한이 피의 숙청을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원래 수재형의 인간들이 독자 노선을 펴고, 추
종세력이 없듯이 황장엽은 연계 세력이 없기 때문에 조용히 정리 작업
을 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또 혁명 1세대
나 원로 그룹들은 연령상으로 보아도 실권과는 관계없으므로 이들을 내
몰아 소외감을 주기보다는 실권없는 명예직을 많이 만들어 순탄한 세력
교체 작업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
은 중국의 덩샤오핑 사망 등 최근 격변하고 있는 주변국의 정세와 고질
적인 식량난, 그리고 황장엽 망명으로 거세지고 있는 지식층의 이반 등
을 잠재우는 한편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강경 지도부
가 피의 대숙청을 감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