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비자발급을 못한다는 얘기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갖고온 돈도 다 떨어져가는데 정말 큰 일 났습니다』 ….

24일 오전 북경(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통하는 길목. 50
여명의 조선족 교포들이 여기저기서 서성대고 있다. 대부분이 1주일
넘게 이곳에 머물면서 한국행 비자발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 12일 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요청
하면서 황씨의 신변안전을 위해 건물 출입을 봉쇄하는 바람에 비자발
급 업무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국경에 인접해있는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이틀간 기차를
타고 지난 14일 도착했다는 50대 아주머니는 『3월16일 한국에 사는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자를 받으려고 왔다』며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시름어린 표정을 지었다.

북경과 2천㎞ 정도 떨어진 길림성에서 온 이모씨(69)부부의 사연은
더욱 안타깝다. 한국에 사는 85세의 누님이 위독하다고 해서 마지막으
로 얼굴을 보기위해 6백원(한국돈 6만원정도)을 갖고 북경에 왔는데,
10일째 오도가도 못한다며 대사관을 원망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조선족 신부를 한국에 데리고 가야 하는 최모씨도
발을 동동구르기는 마찬가지다. 최씨의 여권은 더군다나 25일까지 영
사확인을 다시 받지않으면 기간만료로 무효가 된다.

영사부 앞에는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들을 간직한 조선족 1백여명이
매일「출근」한다.

영사부는 지난 13일 「내부사정으로 영사업무를 13-14일 중단한다」고
공고했다가 그 이후에는 아무 설명도 없더니 17일이 돼서야 「당분간
중단한다」고 안내문을 내붙였다. 17일에는 기자들의 질문에 『20일쯤
공보원의 수리가 끝나면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가, 20일에는
『24일쯤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24일 오전 11시에는 영
사부 어귀에 중국 경찰이 또다시 「당분간 중단한다」는 「고지」를 갈아
붙였다.

이날 대사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공보원에서 (비자발급을) 하려했으
나 중국 외교부가 안전을보장할 수 없다며 당분간 하지 말라고 해 공
용업무만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영사부앞의 동포들은 이런 설명이라
도 듣기를 바랐으나, 그들앞에 뒤늦게 나타난 것은 기약없는 고지문
한장이었다. 17일 붙여졌던 안내문은 누군가에 의해 바로 다음날 반쯤
찢겨졌다. 이날 붙인 고지문도 언제 찢겨나갈지 알수 없는 분위기다.

< 북경=최병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