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가 창작집 「두 개의 얼굴」(문화공간)을 펴냈다. 장년의 나이
에 접어든 세대가 굳어진 일상적 삶에서 일탈하려는 욕망과 그 저변에
깔린 죽음에 대한 의식, 삶에 대한 허무주의가 이 소설집을 관통하고 있
다.
바람연작이란 이름으로 실린 단편 「어떤 회귀」 「두 개의 얼굴」 「몽환」
「이 모순과의 화해」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식곤증같은 권태감」에 빠져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섹스는 호기
심과 수치심, 설렘을 상실한 행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성에 대한 욕망
은 죽음에 대한 본능과 함께 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등장 인물들을 지배
한다. 열정 속에 스며있는 우울함이 이 소설집의 정조를 형성한다. 「두
개의 얼굴」에 등장하는 부부는 해외 여행을 떠나 모처럼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는데, 아내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그 시간 남편은 현지에
서 사귄 일본 여성과 밀애를 나눈다. 아내의 죽음은 모든 인간은 혼자
죽는다는 실존주의적 고독을 확인시킨다. 일본인 애인의 얼굴 위에 겹쳐
지는 죽은 아내의 얼굴은 죽음이 내장된 우리 모두의 실존적 초상을 의
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