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탁에서 큰 녀석이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넌지시 꺼내놓는다.제
깐에는 당연한 일이었던지 무덤덤한 표정이다. 어느 학교에 배정될 것이
라고 이미 알았기에 나 역시 애틋함은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 어머니는
남다른 감회가 있는 듯 배정통지서를 만지작거렸다.

중학교 무시험 첫 「수혜자」인 아내는 중학교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다니던 초등학교와는 동떨어진 강건너 공장지대에
위치한 중학교에 배정받아 난감해 하던 일, 더 멀리 이사가게 되어 시간
반이상을 버스에 시달리며 졸며 종점까지 갔던 일… 중학교 배정하면 버
스통학이 우선 눈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큰녀석이 아파트 어귀에 자리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으니
여간 다행스러운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머니 또한 손주의 중학교 배정에
아련한 소회를 갖고 계신 것 같다.

30여년 전 추운 겨울 어느날 어머니는 당신의 귀밑에도 못미치는
쬐그만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며 혜화동 로터리 담장밑을 서성거렸다. 옛
날 아들의 턱걸이 시험을 발돋움하며 지켜보셨기에 손주의 입학을 안도하
며 흐믓해 하시는 것같다.

『네 아빠는 그때 할머니 어깨밖에 안됐는데…. 그래도 강단이 있
어 달리기도 곧잘 했지.』 이번 겨울에 부쩍 커버린 손주녀석이 마냥 미더
운양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큰 아이는 그때의 나보다 족히 한뼘 이
상은 큰 것같다. 몸무게도 얼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와 비슷하다.

주말이면 집에 찾아오는 아이 친구들도 거개가 같은 모습이다. 그
런 녀석들이 체력만큼은 그때 아이들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것같다. 평행
봉은 커녕 철봉에 매달리는 것조차도 힘들어 한다. 아이들에게 일러둔
다. 너희들은 버스에 시달리지도 않으니 그 시간만큼 학교에서 더 운동
을 하라고… 공부도 체력이 좋아야 잘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