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귀순과정이 조금씩 공개되면서 함께 귀
순한 김덕홍이 이번 사건에서 단순한 「조역」 이상의 역할을 한것으로 드
러나고 있다. 그와 황의 관계는 「주군과 심복」의 관계 이상이었다.

황은 작년 11월 작성한 서신에서 김덕홍을 「나의 동생이자 전우」라
고 지칭했다. 자기가 죽더라도 김은 살아남아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까
지 말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황에게 집중된 상태에서 김은 제대로 조명
을 받고있지 못하지만 이번 귀순드라마의 각본과 연출을 도맡았을 가능성
이 높다.

귀순의 시기와 방법, 성공 가능성 등을 물색하고, 구체적인 귀순계
획 등을 직접작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선 어쩌면 황장엽의 귀
순을 김이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김이 1년 넘게 북한의 감시에 포착되지 않고 「거사」를 꾸밀 수 있
었던 것은 이미 95년 4월부터 「려광무역」총사장으로 북경에 나와있어 활
동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지난 2년동안 대북투자 알선이나 교역, 임가공사업을 하면서
많은 남한 기업인들을 접촉해와, 국내 대북관련 업체 관계자들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김은 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의 「거간」역할도 했다.

국내 한 기업인에 의하면 그는 특히 북한이 고향인 기업인들의 가
족찾기를 알선해주고 상당한대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만들
어진 돈은 대부분은 그가 총재로 있는 「국제평화주체재단」으로 흘러들어
갔다.

해외에 조직된 주체사상연구소의 자금지원은 물론 김정일의 비자금
의 일부도 여기서 충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한에 삼촌이 살고 있는 월남자 출신이자,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
구실 부실장이라는 직급으로, 남한 기업인과 거리낌없이 접촉할 정도로
자유로웠던 것은 황장엽이 뒤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 출신으로 황의 제자이며 오랜기간 황
의 핵심측근으로 활동해온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