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북경(베이징) 상공엔
구름 한점 없었다. 영하 2도. 이날 새벽 한때 영하
6도까지 떨어졌던 수은주는 해가 뜨면서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전 9시30분쯤(북경시각· 한국시각 오전
10시30분·이하 북경시각) 북경 조양구 건국
문외일단북로 11호 북한 대사관앞. 정문이 열리면서
70대와 50대의 두 남자가 나섰다.검은색 오버코트에
털모자 차림. 북한 주체사상의 대가 황장엽(72)과
비서 김덕홍(50대후반)이었다.
두 사람은 대사관 정문을 나서자 동대교로를
따라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난 7일부터 시작돼
11일까지 5일간이나 계속된 춘절(우리의 설) 연휴를
끝내고 직장을 향하는 북경시민들로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한참을 걷던 두 사람은동사십조로와 마주치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삼환동로와 마주치자
왼쪽으로 한번 더 꺽었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백화점과 상점들이 밀집돼 있는 번화가.
황일행이 북한 대사관 관계자에게 말해둔 행선지였
다. 그러나 백화점으로 가는 길 중간엔 황일행의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던 숨막히게 은밀한 목적지'가
있었다. 주북경 한국총영사관. 오전 10시 15분.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총영사관 건물에 접근하던
황일행은 경비병을 향해 물었다.
『여기가 한국대사관입니까?』
총영사관을 대사관으로 잘못 알고있었던 것이다.
『누구십니까.』
『나는 황장엽이요.』
총영사관 문이 열리면서 두사람은 빨려들어가듯 모습을
감췄다. 주체사상의 「최고 권위자」이자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적 교사였던 황장엽이 바로 그
「주체사상」을 버리는 순간이었다.
남상욱총영사가 황의 귀순의사를 확인하는 동안
1.5㎞ 떨어진 곳에 있는 대사관 관계자들이 달려왔다.
대사는 이날 서울에서 열리는
해와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낮 12시40분 북경을
출발하는 대한항공 KE 651편으로 로
떠날 예정이었다. 정대사의 일시귀국 일정은 즉시 취소
됐다.
대사관과 총영사관에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겉으로는 어수선함과 부산함이 뒤섞였으나 이상하리만
치 가라앉자 있었다. 북경주재 특파원들이 대사관에
들렀지만 아무도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외교채널과 본국 보고채널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후 6시 정대사는 총영사관으로 가 황을
만났다. 대사로서 황의 망명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총영사관 주변에 경비병력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오후 7시40분에는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중국경찰 20여명이 승합버스 편으로 한국총영사관
주변을 에워쌌다. 평소 권총만 휴대한 경찰관 6명이
경비를 서왔다. 무장경찰은 오후 8시가 넘어서면서부터
50여명으로 늘었다. 같은 시각 주중 한국대사관
주변에도 10여명의 공안원들이 배치돼 경비를 강화했다.
황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2층 건물의 2층은
밤새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황일행은 대사관측이
급히 마련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총영사관 주변에는 밤 늦게 까지 외신기자들이
진을 치고 취재에 열을 올렸다.
황의 귀순소식은 순식간에 전화선을 타고 황해를
건너와 안기부, 외무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오후 5시30분 정부는 언론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북경=박승준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