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간첩과의 접선은 남의 아내와 갖는 은밀한 밀회와 매우 유사하
다. 분노한 남편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가 손에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은 권총과 수갑을 들고 관목 뒤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는 상대측 방첩기관 요원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
지않다.』.

스파이들이 체험한 각국 도시의 모습은 어떨까. KGB 대외정보국 소
속 요원으로 활약한 「소련 스파이」들이 쓴 세계 여행기가 나왔다. 「KGB
와 함께 하는 세계 여행」(사 간)은 가슴 두근두근한 스파이 소
설과 문화적인 통찰이 뛰어난 여행기를 합쳐 놓은 듯한 책. 뉴욕
로마 파리 멕시코시티 에서 활약한 「스파이」들이 흥미진지
한 스파이담과 함께 각 나라의 뒷골목, 식당, 바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스파이에게 외국 도시는 전쟁터. 전쟁터를 손바닥처럼 알기 위해
파견 전 정보학교에서 치밀하게 연구한다.

이 책에는 어느 도시하면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명소만을 훑고 있지
않다. 유명한 사상가, 혁명가가 한잔 기울였던 선술집의 분위기까지 전
해주는 책. 「스파이는 박학다식해야 한다」는 명제가 새삼 떠오를 정도
로 장소마다 역사와 문학이 버무려져 있다. 조여오는 긴장감 때문에 위
장병, 대장염 등 갖가지 병으로 고생하는 첩보원들의 처지나 첩보활동
중연애담 등 각자의 체험을 낱낱이 털어놓은 것도 책을 읽는 재미. 가
볍게 넘겨 읽으면서 도시에 얽힌 이야기와 그곳에서 풍겨나오는 향취까
지 맡을 수 있는 글이 전문 여행작가 못지않다. 러시아에서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으로 황성준 모스크바 특파원이 번
역했다.

● 스파이들의 접선 장소, 펍.

여행으로 초대한 미하일 류비모프 대령은 『영국의 펍만큼 스
파이에게 좋은 장소를 찾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다트나 당구를 할 수
있고 요기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펍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카
페에서처럼 웨이터가 테이블까지 안내해주지도 않고 주문을 하라고 못
살게 굴지도 않아 구석에 처박혀 재빠르게 고정간첩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장소. 베이커 거리에 있는 셜록 홈스 펍은 탐정소설의 주인공 홈스
와 와트슨 박사의 밀랍인형까지 두고 서재처럼 꾸민 곳으로 특히 유명
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펍에서 평화로운 여유를 즐기다 정보기관에 잡
혀 추방당했다. 버클리 소공원의 헌 책방들도 책선반에서 조용히 이야
기하거나 책에 지시사항을 꽂으며 고정간첩과 접선하기 좋은 장소. 그
는 성 제임스 거리의 유명한 신발 수선점과 최고의 포도주 상점 「베리
형제와 라드」도 소개한다. 이층버스로 을 돌아보는 것을 『위스키
대신 화장수를 마시는 것 같다』고 비웃은 그는 『도시를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산책보다 좋은 게 없다』고 한다. 에는 「보르델과 의
주교들」 「템스 강변의 목로술집」 등 흥미로운 도보행군 프로그램도 많
다고 그는 소개한다.

미하일 브라젤로노프 소장은 파리에서 미국인 정보원과 접촉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흥미진지하게 옮겼다. 그 중간중간 노트르담 성당, 루
브르 박물관, 로댕 박물관, 콩코르드 광장, 몽마르트 언덕, 맥심 레스
토랑등 파리의 명물들이 등장한다. 『나는 모페타르 거리 옆에 있는 작
은 콩트레스카르프 광장에 있는 카페로 들어간다. 이 카페의 2층에는
「유쾌한 흑인」이란 선술집이 있는데 헤밍웨이가 살던 시절 하층민들이
주로 이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하층민들은 이미 오래 전 근교로 쫓겨나
고 갈랴 정원과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파리지앵 이상으로 거리
곳곳에 깃든 역사를 읊은 그는 『혐오감을 느끼면서 물랭 루주를 바라본
다.

낮에 이 건물은 화장을 지워버린 늙은 여인 마냥 괴기스럽다. 유명
한 풍차는 힘없이 늘어져 전혀 마음을 끌지 못한다』 등 파리의 얼굴에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2프랑을 넣고 들어가는 금속제 원통형
공중화장실 등 문명비판 같은 재치있는 글이 맛있다. 이즈베스티야의
로마특파원으로 첩보활동을 겸한 레오니드 콜로소프중령은 『로마에서
사고파는 것 세가지는 예수, 성직, 여자, 로마에서 한가한 사람들이 하
는 일 세가지는 산책, 음란, 도박…』이라며 이탈리아를 날카롭게 꼬집
는다.

이 책을 쓴 스파이들 대부분이 미식가. 첩보활동 중 찾은 식당이나
음식을 낱낱이 소개해놓기도 했다. 에서 활동한 바실리 티모페예프
대령은 서방 외교관과 접촉하기 위해 피야타이 거리에 있는 사바치 식
당을 찾았는데, 자그마한 공원에 있는 식당의 실내나 음식 모두 탁월하
다고 소개한다. 식탁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해산물·생선요리가 훌
륭하면서 값도 시내 고급식당보다 쌌다는 것.

에서 활동한 레프 바우신 대령은 인상 깊은 요리들을
소개했다. 삶은 대두에 레몬즙과 올리브유로 향을 내고 얇게 썬 마늘을
뿌린 풀 무다마스는 싸고 푸짐해서 빈민층에서 중산층까지 함께 즐기는
요리. 그외 잘게 썬 대두 파슬리 미나리 양파 마늘을 섞어 살짝 튀긴
타아미미야, 가지를 으깬 걸쭉한 국물에 레몬즙 올리브유 마늘을 섞은
바바 가누크, 간 양고기에 양파 마늘 파슬리 박하를 섞어 튀겨낸 코프
투 등을 그는 권한다.

그는 육체적 과로와 과도한 긴장으로 고통받는 첩보원에게 홍해 여
행은 해독제 같은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한적한 해변 후르가다가 그
의 추천 장소. 벽촌에 불과하던 이곳은 최근 관광붐을 타고 현
대식호텔이 들어섰는데, 스킨 스쿠버, 바다낚시, 수중스키를 즐기거나
그저 가만히 있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그는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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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눈먼 「스코틀랜드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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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튜어트의 일생을 그린 슈테판 츠바이크저 「스코틀랜드의 여
왕」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고, 17세에 프랑스 왕비에
올랐으나 1년 만에 남편을 잃은 여성,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단
두대에서 죽음을 맞은 메리 스튜어트의 극적인 삶을 다룬 전기소설이
나왔다.

세계역사상 가장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한 여성 메리 스튜어트. 「마
젤란」 「마리 앙앙투아네트」 등 전기작가로서 명성을 굳힌 슈테판 츠바
이크가 메리 스튜어트에 관해 쓴 전기소설 「스코틀랜드의 여왕」(자작
나무간)이 번역돼 나왔다. 『나는 진짜로 믿을 만한 책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책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료들을 비교
하게 됐고 어느새 메리 스튜어트의 생애를 쓰고 있었다.』 저자는 이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묘사가 극단적으로 엇갈려 자신이 직접
전기를 쓰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메리 스튜어트의 일생을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으로 이뤄진
유럽 왕가들의 암투를 바탕에 깔고 그리고 있다. 메리 스튜어트는 가톨
릭, 엘리자베스 여왕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인물. 역사기록도 신교도는
메리스튜어트에게, 구고도는 엘리자베스여왕에게 모든 죄를 씌우고 있
어 메리에 관한 평가가 살인자에서 순교자, 협잡꾼에서 성녀로 극단적
으로 다르게 그려져왔다.

츠바이크는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인간 심리를 파헤치며 독자들을
이끈다.

태어날 때부터 정쟁의 희생물이 된 메리 스튜어트. 여섯살 때 프랑
스 왕자와 정략 결혼, 고향을 등졌던 그는 과부가 돼 열여덟살 때 고국
으로 돌아온다. 메리가 여성적인 정열에 눈뜬 것은 스물세살 때. 열아
홉살왕자 단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성급하게 결혼하지만 곧 그의 경박함
에 실망한 그는 다시 강철 같은 전사 보스웰의 남성다움에 빠져든다.

보스웰을 향한 메리의 정열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비유될 정도.

사랑에 눈이 멀어 남편 단리의 살해범으로 지목되는 보스웰과 서둘러
결혼한 메리는 결국 왕국을 잃고 영국으로 피신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
에게 감금당했다 여왕 암살 기도라는 누명을 쓰고 마지막을 맞는다. 작
가는 엇갈리는 사료들을 추리고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우
면서 메리의 일생을 인간과 역사의 대드라마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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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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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여우.

「무의미 시」를 주창,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김춘수 시인이 자
신의 성장기를 되돌아본 자전소설. 서너살 때 바라본 맑은 하늘과 수평
선을 명징하게 기억하는 그는 유년시절을 『감각적 눈뜸의 시기』로 정의
한다. 순수 예술로서의 시, 무의미 시로 나가게 된 과정도 담겼다.민음
사간, 6천원.

● 두뇌전환.

TPR(Total Physical Response) 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애셔 박사
가 뇌가정보를 처리하는 과정과 이를 이용한 학습법을 소개한 책. 오른
쪽뇌로 들어온 정보가 왼쪽 뇌로 이동·저장되는 과정을 설명한 그는
오른뇌에 중점을 둔 새로운 두뇌 활용, 학습법을 소개한다. 임규혁 옮
김.열림원 간, 6천5백원.

● 지붕 밑의 작은 우주.

『집은 사람의 현재이며 과거이며 또한 미래이다.』 건축가 씨
의 집 이야기.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저자는
아파트의 기원, 부엌의 역사 등 집이 변천해온 과정과 함께 「거실에서
장식장을 없애자」 등 건축가로서 본 우리 주택문화에 대한 제언도 담았
다. 살림 간, 8천원.

● 가는 길.

『 가 고스톱을 치는데 이 스리 고
에 따따블로 판을 끝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개평 좀 주라」고 하자,
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 안됩니다. 내가 대쪽 아닙니까?」
했다.』 정치 개그작가 장덕균씨가 대권주자들을 소재로 쓴 유머집. 새
와 물고기 간, 6천원.

● 기계 앵무새.

부랑자, 전과자, 막노동꾼 등 밑바닥 인물들을 그려온 소설가 김신
용씨가 그들의 삶에 실존적으로 접근한 소설. 주인공이 「제비집」이란
부랑자의 집에서 「모짤트」란 별명의 부랑자를 만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그를 통해 무욕의 자유를 배운
다는 내용. 세계사간, 6천5백원.

● 창세의 수호신.

「신의 지문」 작가 그레이엄 헨콕과 건축기사 로버트 보발이 함께 쓴
스핑크스의 미스터리. 기자의 스핑크스가 이제까지 학자들이 말한 기원
전 2천5백년이 아니라 기원전 1만5천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하는 이
들은 기자 묘역의 건축물들이 그 연대의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
다. 까치 간, 1만원.

● 문명의 종말.

인류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초고대문명 대륙 아틀란티스. 랜드와
로즈 플렘 아스 부부는 아틀란티스를 멸망시킨 대지진과 홍수가 급격한
지구의 지각운동에 의해 발생했다며, 대서양 바다 속으로 침몰한 것으
로 알려진 아틀란티스가 바로 남극대륙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민윤기
옮김. 넥서스 간, 7천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