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은 1877년이다. 그러나 그것은
「틴포일」이라는 요즘의 은박지 비슷한 판에다 소리를 녹음했다가 재생
한 것이고 실질적으로 음반이라고 할수 있는 것은 1889년 파리에서의
프랑스혁명 1백주년 기념 박람회 때에 전시한 실린더 음반이었다. 그리
고 스프링으로 모터가 돌아가는 상당히 발전한 40달러 가격의 축음기와
2분짜리 실린더 음반이 시판된 것은 1895년이다.
그러나 1897년에 그라마폰 회사가 시판한 축음기는 지금 CD와 같은
크기인 5인치짜리 디스크 음반을 턴테이블에 얹어 손으로 돌리는 극히
원시적인 기계였다. 1898년에야 스프링을 이용해서 턴데이블을 돌리는
「베르리너」축음기가 시판되었다.
그러나 에디슨회사에 비해 훨씬 뒤에 출발한 그라마폰(빅터회사의
자매회사이며 현재 와 도이치그라마폰의 전신)이 불과 10년 후에는
에디슨을 앞지르게 되고 약 30년 후인 1929년에는 에디슨은 문을 닫고
그라마폰의 디스크음반은 LP를 거쳐 CD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에 이
르렀다. 그 이유는 기계(하드웨어)에서 앞선 에디슨이 음반(소프트웨어)
의 경쟁에서 그라마폰에게 패한 때문이다.
첫째는 원통형 실린더보다 평평한 디스크가 여러모로 우수하다. 디
스크음반은 1897년 5인치짜리가 곧 10인치가 되고 1903년에는 12인치로
앞뒤 양면에 10분까지 음악을 녹음할 수가 있었으나, 에디슨의 실린더
는 처음 2분짜리에서 1902년에야 4분짜리가 생산되었다. 또한 디스크
음반은 마스터 음반 한개에서 거의 무제한으로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장
점을 가지고 있으나, 실린더 음반은 대량생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라마폰의 승리의원인은 음반의 내용 때문이었
다. 원래가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에디슨은 기
계의 발전에 중점을 두어 실린더음반에는 무명가수들의 대중가요나 코
미디대화가 주였다. 한편 그라마폰회사는 처음 거리의 악사들을 녹음한
것으로 시작해서 1901년부터는 많은 돈을 들여 세계 굴지의 가
수들의 노래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로는 장난감같은 축음기의
10인치짜리 음반에서 「」를 듣는다는 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즉 상업성이 전혀없어 보이는 미래에 그라마폰 회사는 회사의 운
명을 건 도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도박은 적중해서 그라마폰과 빅터의 축음기와 가
수들의 음반은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에디슨은뒤늦게 1912년에 다이아
몬드 디스크라는 디스크 음반을 개발-시판했으나 바늘이 상하수직으로
움직이는 에디슨 기계에 바늘이 좌우 수평으로움직이는 그라마폰음반을
쓸수 없는 관계로 음반시장을 잃은 에디슨 회사는 1929년에 기계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한편, 실린더 음반으로 시작한 콜럼비아사는 1901년 재
빠르게 디스크 음반을 시작했고 클래식 음반에 중점을 둬 늦게나마 그
라마폰과 빅터회사와 경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