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보철강 처리과정에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한보 미스
터리」가 더욱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태 수습을 주도적으로 처리해야할 은행들이 정부쪽에 「하명」 내
지는 「방향제시」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잦고, 해당 은행장들은
어디선가 지시를 받는듯 허둥대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정부가 끝까지 책임지고 사태수습을 거들어줘야
지, 지금 와서 은행들에게 「알아서 수습하라」는 식으로 나오면 어떡하
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그동안 거대한 자금지원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했다는 강한
시사이며, 각 은행이 정부에 공동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발언이다.
23일에도 은행권에서는 한보그룹 총회장 일가에게서 경영
권을 박탈할 것이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오락가락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경영권을 빼앗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설명하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뒤바뀐 셈이다.
사실 그동안 은행권에서는 한보철강 성장과정에서 대강 3가지 미스
터리를 줄곧 제기해왔다.
예를 들어 당진공장 건설에 무려 5조원을 동원한 한보그룹
총회장의 자금줄은 그동안 금융계와 재계의 깊은 연구대상이었다. 그
러나 이번 한보철강 금융위기 사태로 한보그룹의 핵심 자금줄은 결국
은행금고였음이 드러났다.
여기서 첫번째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제일-산업 등 거래은행들이
최근 3년사이 한보에 3조6천억원의 거액을 덥석 내준 것은 꼼꼼하기로
유명한 은행신용조사 관행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91년 수서사건이후 보험-종금사 등 제2금융권은 한보에 빌려주었던
대출금을 줄기차게 회수, 한보는 그동안 제2금융권을 통한 자금파이프
가 거의 말라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총회장이 6조원대의 자금이 들어가는 철강공
장 건설의 대역사를 밀어붙인 것은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다.
95년12월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정회장이
노씨의 자금을 수백억원 갖다쓴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는 전체 조달자
금과 비교해볼 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95년초 한보그룹 13개 계열사에 대한 금융기
관의 총여신액은 1조9천5백억원 수준이었으나, 불과 2년만에 여신액이
5조원대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관련, 채권은행단 임원들은 『과거 은행장들이 「모종의 연락」
을받고 대출결정을 해온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문민정부 출범후 사정
바람이 거센 가운데 행장들이 뒷감당하기 힘든 대출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두번째 미스터리는 의 「이상한 행동」이다. 이번 한보철강
정리과정에서 은 오락가락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정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뺏겠다고 발표했다가, 한보측이 「그냥 앉아
있지만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갑자기 경영권을 보장해주자고 채권은
행단을 설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원래 은 93년말까지만 해도 한보관련 여신이 거의 없었으
나 94년부터 갑자기 증가, 올 1월 현재 무려 1조7천억원대(한보철강 1
조원포함)로 늘어났다.
은 『당진공장 건설자금을 지급보증 형태로 계속 지원하다
보니 여신액이 늘어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정
황이 너무 많다. 95년6월 이 부도난 유원건설을 정리할 때 막
판까지 인수조건을 협의했던곳은 대성산업그룹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철수행장이 이사회의 토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채 갑자기 한보그룹을
인수자로 선정해버렸다.
이때문에 당시 이 「후원세력」의 압력을 받고 한보에게 유
원건설을 넘겨준 것이 아니냐는 풍문이 나돌았다. 한보는 유원건설을
인수한 후, 국내 30대 재벌에서 일약 10대 재벌로 부상했다.
원래 93년까지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은 서울은행이었고, 한보그
룹 모기업인 한보주택은 이 주거래은행이었다.
조흥과 서울은행은 수서스캔들 발생후 금융거래를 줄였으나, 전임
장인 박기진- 두 행장이 한보와 거래를 크게 늘리면서
주거래은행이 됐다.
세번째 미스터리는 한보의 6조원짜리 대형제철소 건설계획에 정부
차원에서 어떤 견제나 사업성 검토 움직임이 없었던 점이다.
한보가 철강업에 진출한 것은 지난 90년12월 아산만 80만평 매립
공사 허가를 받아내면서. 때마침 한보는 6공의 특혜시비에 휘말렸으며,
91년 수서사건이 터졌을 때는 그룹이 큰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서 한보는 장기저리의 정책금융을 받아 당진
공장 건설에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고, 잇달아 철근과 핫코일 공장을
완공했다.이어 94년에는 통상산업부에 무려 1조원이 들어가는 「코렉스
(용융환원설비)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했다.
통상산업부 김균섭 기초공업국장은 『당시 기술도입신고는 허가사
항이 아닌 신고사항으로, 별다른 하자가 없어 신고서를 수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제철업 진출을 추진할 때 통상산업부가 공업발전심의
회를 열고 철강공급 과잉 전망자료를 발표하는등 현대제철소 프로젝트
를 저지하느라고 소동을 벌였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