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과 두통 때문에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 마음도 불안하고
정신 집중도 안된다. 혹시 암처럼 나쁜 병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걱
정됐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 의사는
신경성일 뿐이니 염려말라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증세는 여전
했다. 병원을 여러차례 드나들고 한약도 복용해 봤지만 효험이 없다.

급기야 신앙심이 부족한 탓에 이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닌가 생각
하게 됐다.

주변 신자들도 거들었다. 『귀신이 들어 그런 것이니, 우리 합심
기도로 물리칩시다.』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한동
안 신앙에 매달려 열심히 기도 했더니 좀 호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악화됐다.

『정신과에서 쓰는 약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는 엉뚱한 위협
성 충고 탓에 망설여왔지만 그녀는 결국 정신과 병원을 찾아들었다. 그
녀의 증상들은 뇌기능 장애, 또는 심인성 노이로제였다. 원시적 해석으
로는 흔히 「귀신들림」이라 부르는 장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계모 밑
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자랐다. 커서도 부모에 대한 뿌리깊은
원망이 그녀를 줄곧 괴롭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따
라가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게만 생각됐다. 나쁜 마음을 의도
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할 수록, 나쁜 마음은 더욱 더 크게 의식될 뿐이
었다.

그녀는 그 나쁜 마음이 「귀신」이나 「사탄」같은 외부의 적이라 여
겼다.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은 본래 따로 있는 게 아닌데도, 그녀는
적을 만들어 놓고 괴로워 했다. 모든 질병에는 다 그 원인이 있게 마련
이다. 똑같은 질병이라도 개인마다 나타나는 증상에 여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내면의 적」을 다루는 관용의 기술을 터득하지 않으면 회복은
어렵다. 약물 치료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 광혜병원장 · 정신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