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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제 하나의 공동운명체가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전세계를 연결시키는 정보통신망의 구축, 러시아와 동유럽의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마련된 전지구적 시장경제,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 활동하는
초국적 기업의 강화 등은 이제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질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그러나 지구환경문제는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공동체의
운명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지구적 수준에서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정치학이 절실하게 요청된
다.

「앤트로피」와 「노동의 종말」 등의 저서로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문명비평가 제래미 리프킨은 「생명권 정치학」이라는 새 책(이정배옮김,대
화출판사)에서 기존의 학문적 경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풍부한 상상력
을 바탕으로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정치학을 제시한다. 리프킨은 이 책의
1부와 2부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맥루한에
이르는 서양의 지성사를 관통하며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연을 통제하
고 착취해온 서구적 근대의 기계적이고 지정학적인 세계관을 비판하고 새
로운 세계관을 제시 한다. 새로운 세계관은 지구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
체로 보며 인간을 그것과 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본다. 리프킨은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생명권 정치를 제창한다.

인간과 지구생태계를 포괄하는 생명권 정치는 경제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죽임의 정치」가 아니라 인간과 모든 생명을 가능케하는
「어머니로서의 지구」 사이의 화해와 새로운 통합을 지향하는 「살림의 정
치」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지난 30여년 간 전세계적으로 전개되어 온
참여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운동,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잠재력 개발운동과
영적 각성운동 등의 흐름을 하나로 엮어내는 새로운 정치이기도 하다.

리프킨은 3부와 4부에서 지구와 인간 사이의 분리 과정과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매우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현대인의 신앙이 될 소비를
위한 소비, 성욕이라는 이미지와 가장 잘 결합되는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환경파괴의 모습들, 후각, 촉각, 청각을 희생시키고 시각 위주로 인간의
원초적 감각을 변형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현대문명의 모
습을 생생하게 제시하는 리프킨의 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 정복과 지배의
논리로서의 세계화가 아니라 화해와 연대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세계화
논리를 독자들은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