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찬=고음반전문가-재미신경정신과전문의. >.
올해로 레코드가 탄생한지 꼭 1백주년. 바로 영국 EMi레코드사의
역사다. 마이크가 개발되기 전 소리를 직접 녹음하던 `어쿠스틱'방
식부터 SP-LP-CD-DAT-MD를 거쳐 최근의 `디지털 비디오디스크'()까
지, 연주내용을 음반에 기록하는 레코드기술은 눈부신발전을 이뤘다.
고음반전문가 신현찬씨의 `레코드 1백년' 시리즈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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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4월 어느날 에밀 베를리너(1851∼1929년)라는 19세의 독일청년
이 미국행 이민선에 올랐다. 특별한 학력이나 뚜렷한 기술을 갖지 않은
이 청년은 그저 신대륙에 꿈을 두고 고향 독일의 하노버를 등진 것이다.
이국땅에 내린 베를리너는 직장을 찾아 이도시 저도시로 헤맸다. 5년후
뉴욕에서 사카린을 발명한 팔버그박사의 연구실에 취직이 되었다. 그는
연구에 관심이 많아 시간만 있으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재미
있게 읽은 책은 「물리학과 기상학의 개요」라는 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전
기와 음향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그 직장을 그만두고 워싱턴으로 가서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밤이면 방에 들어앉아 연구를 시작했다. 1870년
에 그 당시의 전화기인 마이크로폰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한 마이크로폰
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는 「벨」전화회사에 7만5천달러를 받고 특허권을 팔았다. 그는 이돈
으로 연구실을 차렸다. 베를리너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것은 1877년 토마
스에디슨(1847∼1931년)이 발명한 축음기였다. 에디슨의 축음기는 큰 단
점이 있었다. 그 당시의 실린더(원통형) 레코드는 재생음은 비교적 좋았
으나 문제는 한번 녹음에 실린더 한 개밖에 만들 수 없었다. 즉 10개의
실린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수가 큰 나팔앞에 서서 큰소리로 똑같은 노
래를 10번을 불러야 했다. 이로 인해 축음기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은 되었으나 그 이용도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때 베를리너는 눈을 번쩍 뜨게하는 기사를 어느 잡지에서 발견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기 7개월 전에 발간된 「사이언스 아카데미」잡지
에 프랑스의 화학자며 의사-시인-발명가인 찰스 크로스(1842∼1888년)가
기고한 음향재생 가능성에 대한 기사였다.
즉 평평한 유리디스크에 녹음하여 그 소리를 재생할수 있다는 기사였
다. 베를리너는 곧 실험에 몰두했다. 유리판을 촛불에두껍게 그슬려서 녹
음한 것을 손으로 돌리는 판에 얹어서 바늘을 대어보니 소리가 재생되었
다. 즉 요즘의 턴테이블의 발명이었다. 그는 3년동안 수많은 실험끝에
상업적으로 가능한 원반레코드를 만드는데 성공해 발명특허를 낸 것이
1887년, 그리고 다음해에 필라델피아 프랑크린 인스티튜트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의 발명이 실제로 상품으로 시중에 나오는 데는 많은
시일이 걸렸다. 미국에 베를리너회사를 설립한 후 에 세운 것이 「그
라모폰」회사, 곧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레코드사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