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때 애국애족정신 붇돋워...광복후 어린이사랑 운동 ##
## 80년대 50만부발행 신기원...최근 인터넷으로 지구촌화 ##.
「」가 10일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일제 시대에 어린이
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사가 태동시킨 「」는
창간 이후 60년간 어린이의 영원한 벗으로 어린이 문화와 교육을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는 그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
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이 곁을 떠날 수 없다」는 자세로 온갖 시련
을 이겨내, 마침내 한국 어린이 신문 사상 처음으로 창간 60주년 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의 60년 발자취를 돌아본다..
자매지 「」는 암울했던 일제 시대인 1937년 1월
10일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새로운 지식을 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 날 는 「조선의 어린이들이 굳세고 슬기
롭게 자라도록 이끌고 새로운 것을 익히려는 어린이들의 지식 욕구를 채
워주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4쪽씩 를 펴냅니다」라는 기사
를 내보내 「」의 탄생을 전국에 알렸다.
초기 「」는 주 1회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발행됐다. 1면
은 주로 화보중심으로 꾸몄고, 역사와 과학-학습-동화-동시-동요가 나머
지 3면에 실렸다. 일제 시대에는 어린이들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애국
애족의 정신을 불어넣었으며, 어린이사랑 운동에 적극 앞장서 오늘날 어
린이 사랑운동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리게 하는데 절대적인 역할
을 했다. 주요한 선생을 비롯 이은상-박목월-강소천-이원수-윤석중 선생
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어 한국 문학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50년대 이후부터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음악콩
쿠르, 전국미술대회, 문예상 타기, 명예기자 제도 등을 운영, 어린이 문
화의 산실이자 교육의 파수꾼 역할을 했다. 어린이 권리 신장에도 앞장
서 어린이는 단순히 가정의 자녀로서 뿐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대
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줌으로써 어린이를 사회의 한 구성원
으로 인정케 하는 데 앞장섰다. 마땅한 어린이 놀이 문화가 형성되지 않
았던 60년대와 70년대에 「」는 어린이들의 친근한 벗이자 대
화의 광장이 되어주었다.
80년대 들어 「」는 양적으로 어린이 신문 사상 최초로 50
만부를 발행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질적으로는 세계화 흐름을 적극 반
영, 명예기자의 해외 취재와 컴퓨터 제작 등이 이뤄졌다. 명예 기자들의
해외 취재는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돼, 90년에는 백두산 정상에 「소년조
선일보」 깃발을 휘날리기도 했다. 또 지난해 5월 5일부터는 「소년조선일
보」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지구촌 어린이들에게까지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의 역할과 중요성은 90년대 들어서 한층 커졌다. 일선
초등학교에서 신문을 통한 교육, 즉 NIE(Newspaper In Education) 교육
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 「」는 일선 학교와
교사-어린이들의 이같은 요구에 부응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제2의 교
과서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는 한국의 만화발전에도 큰 몫을 했다. 60년대 만화
「꺼벙이」 「풍운아 홍길동」과 소설 「소년 삼국지」는 한동안 장안의 화제
가 되었으며. 특히 「풍운아 홍길동」은 훗날 만화 영화로도 제작돼 어린
이뿐 아니라 어른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모았다. 「홍길동」을 처음 만화로
소개한 신동우화백을 비롯해 오늘날 이름을 크게 날리고 있는 이현세 허
영만 한희작씨가 초기에 「」에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꺼벙이」를 주인공으로 한 길창덕화백, 지금도
손오공을 주인공으로 재미난 만화를 연재중인 신문수화백 등도 「소년 조
선일보」를 통해 인기를 모은 만화가들.
앞으로 「」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어린이들의 다양한 생
각과 욕구를 적극 반영하는 한편, 사회교육적 기능을 더욱 강화할 계획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