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부장>.

지난 연말, 제작된지 25년 만에 국내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
루치 감독의 화제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개봉 당시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논쟁을 비롯해 그동안의 온갖 지성적-분석적 비평과 비
판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도 타당한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그토록 오
래 「금기」로 낙인찍힌 영화가 무삭제(물론 치모노출 장면 등은 흐릿
하게 가렸지만)로 상영되는 아이러니가 영화의 본질 이상으로 당혹
스러웠다. 또 이 영화는 지금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과 반
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모처럼 극장을 찾은 기성세대들에겐 말론
브란도(폴)와 마리아 슈나이더(잔느)의 노골적인 성행위가 충격적일
수 있으나,지하에 나도는 포르노나 이미 상영된 루이 말 감독의 「데
미지」를 본 젊은 관객에겐 「별것 아닌 것」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섣
불리 평을 하는 것도 위험천만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지금껏 나온 비평의 짜깁기가 되기 십상이고, 의미심장한 주제를 다
루고 있어 「재미」만의 잣대로만 재기도 어렵다. 결국 「한 작품의 최
종적 의미는 항상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베루톨리치 감독의 조
언처럼 자기의 관점에서 감상하되, 영화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참
조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하나,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과 대사의 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이미 한 세대 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32
세의 감독이 이처럼 대담한 성애묘사와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낸것은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센세이션만을 노려
이런 영화를 만든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려깊은 관객들은 성애가 이
영화의 본질이 아님을 간파한다. 포르노는 일시적으로 관객을 흥분
시키지만, 거꾸로 이 영화는 남녀의 불같은 섹스를 지켜보며 채워지
지 않는 공허, 군중속의 고독 같은 슬픔을느끼게 만든다. 나아가 오
늘날 신세대에 유행하는 「익명의 사랑」이 이미 한세대 전에 영상화
되었다는 게 놀랍다.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될 장면은제목 그대로
「라스트 탱고」다. 말론 브란도가 엉덩이를 까보이며 규격화된 체제
를 조롱하는 이 대목의 진의는 일본 평론가가 지적했듯 「주인공들의
섹스는 끝나버릴 시간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리듬에
맞춰 도취상태에 몰입하는 라스트탱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영화사에 남을 수 있는 또하나의 평가는 「인간의 원
초적인 성을 정신적인 슬픔과 고독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영화」라는
점. 할리우드의 「원초적 본능」이나 최근 홍상수 감독이 내놓은 「돼
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이르기까지 베르톨루치의 「…라스트 탱고」
가 끼친직-간접 흔적을 간과할 수 없다. 말론 브란도의 연기도 영원
히 기억될 만 하지만, 촬영감독 빗토리오 스토라로의 색채감각과 베
루톨루치가 직접 쓴 상징적인 대사들은 영화 매니아와 전공자들에겐
앞으로도 계속 텍스트가 될 만하다. 이 영화를 금기시한 기간만큼
한국영화가 뒤진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