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정신가치 중시…`문화패권주의' 경계해야 ###.
미래의 세계는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향후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정신가치 혹은 문화의 각축이 국가간, 지역간의
생존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닌게 아니라 문화산업은 이제
고부가가치를 지닌 경제분야로 부상하고 있고, 문화에 대한 관심은
대중적인 차원에서든 학술적 차원에서든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게 달
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헌팅턴(S. Huntington)은 「문명충
돌론」을 제기하면서 장차 서구문화의 경쟁상대로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헌팅턴의 가설은
아랍계학자인 사이드(E.Said)에 의해 또 하나의 서구 지배론의 표현
양식으로 즉각 비판되었지만 유의할 만한 점은 어쨌든 서구학자들이
동아시아 문화를 금후 세계지배의 대권과 상관하여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래 헤겔이나 마르크스 등 대표적 서구지성들에 의해 낙후와 정
체의 표본으로 규정되었던 동아시아 문화가 깊은 열등감으로부터 탈
출하여 오늘의 주목을 받기 까지에는 두 가지 방면에서의 변화가 작
용하였다. 첫째로 정치-경제 방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제무대
상의 뚜렷한 부상이다. 일본의경제적 번영은 물론이고 한국 대만 등
사소룡의 경제기적,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 등은 동아시아 지역
의 정치적위상을 제고시키고 이후 이들의 역할을 주목하게끔 하였다.
둘째로 문화방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상관된 최근의 탈서구
중심적, 탈식민주의적 사조의 흥기이다. 이들 사조는 서구의 합리주
의, 과학만능주의의 횡포를 비판하면서 반사적으로 동양을 중심으로
한 비서구권의 정신가치를 재검토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과연 동아시아 문화의 어떠한 항목들이 오늘날 미래의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는가. 최근 학자들은 경제적으로 전혀 실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유교의 역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른
바 신유가학파에서는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배후에 유교문화가 순기
능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유교의 관리기술, 인간관계 등이 서구형 산
업사회의 폐단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불교와 도교의 경
우 그 현저한 생명사상은 생태학, 환경윤리의 이념적 기초로 수용되
고 있고 주역, 음양오행설 등은 양자역학, 카오스이론 등 신과학과
상관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 예술 분야에서의 응용도 확대
되고 있다. 이밖에 , 풍수설, 기론 등이 서구과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차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 당사자인 동아시아권에서의 자기 문화에 대한 인식과 전
망은 어떠한가? 저명한 일본계 미국학자 후꾸야마는 자연과의 조화
등을 추구하는 일본의 전통가치를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국
의 경우 개방화 이후 1980년대에 문화에 관한 대논쟁을 거치면서 전
통과 현대화라는 양대 주제를 조화시키고자 진력하고 있으며, 전통
문화의 현대적 적용이라는 과제가 진지하게 탐구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근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한
국이야말로 동아시아의 전통가치에 가장 신뢰를 갖고 미래의 역할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최근 점차 학문
의 자생력이 신장되면서 인문사회과학 각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이 전
통사상에 바탕한 이론모델을 고안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바람직한 것이지만 동아시아 문화의 보편
이론화라는 차원에서 두 가지 점에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로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문화적으로 함께 묶일 수 있는 개념인지 충
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이미 중화주의라든가 대동아공영
권 등의 역사적 실례가 말해주듯이 일국 중심의 지배론에 불과했던
만큼 또다른 문화적 패권주의의 출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현재의 문화적 상황을 또 다른 서구중심 통합으로의 조
정국면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서구권의 전통문화 희귀를 반사적 자민
족주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그것은 다름아닌 종족중심
주의일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어떠한 이론체계도 세계의 전모를 드러내 보일수
없다고 보편이론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의 문화가치가 앞서 말한 지역적, 종족적 국한성을 벗어나 널리 힘
을 예증할 수 있을 때 미래의 대안이 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노
신도 말하지 않았던가. 길이란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것
이라고. <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