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민의 비난을 각오하면서 미명 기습 날치기라는 극단을
선택한 것은 자민련 총재 간의 이른바 「시멘트콘
크리트 공조」를 분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이런 시각
을 가진 사람들은 대권공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기폭제가 됐던 목동밀
담발설자를 지목하면서 『쓸데없이 일찍 노출시키는 바람에 화를 자초했
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 실제로 이번 사태는 야권공조에 무슨 영향을 미쳤고, 또 앞으
로는 어떻게 될까.

우선 지금까지 미친 영향. 한마디로 공조는 더 단단해졌고 시점 또한
결정적이었다. 쪽은 『자민련은 이제 갈데가 없어졌다』며 느긋해
졌고, 자민련도 『이렇게 되면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며 「DJ불가피론」으
로 눈에띄게 기울고 있다.

날치기 당일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함께 자면서 철야농성을 하는 동안
양당 사이에는 일종의 「형제애」까지 생겼다. 의원은 『이
전까지는 막연히 공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지, 확신도 없고 양당 의
원들 사이에 정서적인 융합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서로의 필요
성을 느끼고 정서적인 융합까지 갖게 됐다』고 말했고, 자민련 이양희의
원은 『야당체질을 갖도록 해준 에 감사한다』고까지 말했다.

가만 내버려뒀으면 공조페이스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특히 정기국회
폐회일인 18일 공조 분위기는 눈에 띄게 흔들렸다. 안기부법 개정에 대
해 는 「목을 걸고」 반대하는데도 자민련은 조건을 달긴 했지만
사실상 찬성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자민련 내부에서는 만만치않은
노선투쟁이 벌어졌는데 김용환총장 언부총재 등 「DJ불가피론자」들의
반대론이 「DJ절대불가론자」들의 찬성론과 맞선 상황에서 총재는
불가론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19일, 최각규강원지사 유종수 황학수의원 자민련 집단탈당으
로 자민련 분위기는 일거에 돌아서버렸고 26일 일을 당하고서는 「당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두당이 붙어버렸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떨까. 그대로 갈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으나 회
의론도 만만치않다. 야권 공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를 갖고 있는 자
민련 내 절대불가론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기부법
반대라는 현재 당론은 이념적 색깔과는 맞지 않는 것인데 결정적인 시점
에서 이 부분을 문제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간단치 않게
된다. 작금의 노동계 사태도 이들에게는 야권공조에만 쉽게 매달릴 수
없게 만들지 모른다.

게다가 만약 JP가 DJ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이들은 이를
빌미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일부 떨어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DJ와 JP가 갈라서게 될 가능성은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게 다
수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