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체 L사의 K사장은 지난 월요일 김해공장으로 내려갔다. 공장
노사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사실 서울에 있는 사장이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K사장은 자청해서 내려가 근로자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면서 『불황을 맞
아 서로 도와 극복하자』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 회사는 80년대말 치열한 노사분규로 불량품이 속출했으나, 경영진
의 마음 씀씀이가 생산현장에 전달되면서 모범적인 노사업체로 변했다.그
래서인지 어제 오늘 노동관계법 파동에도 노조든 사용자든 끄덕없는 반응
이다.
이번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재계는 시종일관 전투분
위기였다.
경제5단체장 회의, 30대그룹 노무담당 임원회의, 회장단회의,
경총 회장단회의에서 연달아 터져나온 성명은 마치 적국에 대한 선전포고
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경했다.
법안이 완성됐을 때 재계는 「복수노조」를 문제삼긴 했지만, 이것도
과 경총이 약간씩 입장차이만 보였을 뿐 전체적인 내용은 만족스러
워 했다. 그래서 표정관리하기 바빴다. 재계는 노동관계법이 국회에서 기
습처리된 후에도 저으기 안도했다. 『이미 통과된 법안을 누가 번복시킬수
있을 것인가.』.
일단 압승을 거두었다고 판단했는지 재계는 한 발 더나아가 「이제 확
실히 챙길 것은 챙겼다」고 느긋해하는 반응이다.
27일 아침에 열린 경총 긴급 회장단 회의에서는 종전같으면 으레 등장
하던 「불법파업에는 초강경 진압을 해야 한다」 「파업하면 당장 대체인력
을 투입하겠다」는 식의 용어도 등장하지 않았다.
고용불안이나 소득저하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주겠다는 내용까지 나
와 얼핏 근로자 달래기에 나선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벌그룹이나 기업인들은 노조의 반발에 대해 『정부
에서 어떻게 막아주겠지』라며 무신경한 반응이다. 전임원이 나서서 파업
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은 종전보다 크게 약해졌다.
모 금속회사는 27일 일찌감치 종무식을 해버렸다. 『재고도 많은데 공
장라인이 며칠 쉬어도 상관없다』는 회사도 나온다. 『주말와 연말이 겹쳐
지나면 내년부턴 조용해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등장한다.
물론 대부분의 노무담당 경영진들은 지난 수년동안 노조와의 신경전에
지칠대로 지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황국면에서 자신들에게 다소 유
리한 법안이 만들어지자 재계는 너무 빨리 「승자의 오만」을 보이는 것 같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