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염없는 제국 (49) //////.

「이또오」는 일부러 옷과 머리모양에 관한 얘기를 하는듯 했다.

일본이 권고해온 일련의 내정개혁을 확실하게 밀고 나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또오」는 일본헌법에 관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헌법안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텐노」는 신성불가침이다. 이건 제
가 착상하여 넣은 것이지요.』.

황제는 호기심을 가진듯 했으나, 고개만 끄덕일뿐 되묻지는 않았다.

『그간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이젠 성려를 놓으십시오. 일본은
조선반도에서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고 한국의 영토를 확고히 보전할
것입니다.』.

「이또오」는 영토의 보전이란 말을 여러차례 되풀이했다.

자주독립이란 말은 쓰지않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유화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이또오」후작을 믿소.』
『오늘 폐하께서 친히 만찬을 베플어 주셨으니, 큰 광영이 아닐수 없습
니다.』.

만찬이 끝나자 황제는 내정문에 나가 「이또오」를 배웅했다. 이 역시
이례적인 대접이었다.

「손타크」호텔의 귀빈객실은 2층에 있었다.

「이또오」의 공식일정이 끝난 다음날.

난데없이 30세 가량의 양장을 한 여인이 호텔에 나타나 귀빈실로 인도
되었다. 「이또오」의 정부인 배정자였다. 그녀는 기구한 인생행로의 여
자이다.

경상도 김해의 양반가 태생인데, 부친이 모반사건에 걸려 처형되자 가
족들이 모두 죄적에 오르고 가산을 몰수당했다. 어머니를 따라 유랑하
다가 살길이 없어 여승이 되었다. 갑신년, 밀양부사 정병하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밀항하고, 망명중인 안경수에 의탁했다.

이때 나이 16세였다.

출중한 미모에 총명하여 일본말과 글을 금방 익혔다.

뭘 생각했는지 안경수는 배정자를 「오오이소」에 있는 총리대신 「이또오」
의 별장에 데리고 갔다. 「이또오」는 첫눈에 배정자에 반했고, 수양딸로
삼아 별장에 두었다.

그뒤 「이또오」는 동경시내 고급 주택가에 집을 사주고 배정자를 들여앉
혔다. 배정자는 학교에 다니면서 영어와 불어를 배웠다. 정자란 「이또오」
가 지어준 것이고, 본래의 이름은 분남이었다.

첩살림을 하다 어찌어찌해서 귀국하여(아마도 간첩의 임무를 띄었을 것
이다) 서울에서 살았다. 현영운이라는 역관에게 시집을 갔으나 이내 이혼
당했다.

「이또오」의 엽색은 유명했다. 일본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성의 일본
요정에서도 반반한 「게이샤」치고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배정자는 아예 「손타크」호텔에서 「이또오」와 함께 지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양녀니라.』.

「이또오」는 이렇게 말하면서 내놓고 그녀와의 재회를 즐겼던 것이다.

「이또오」는 10일간 서울에서 묶고 귀국길에 올랐다.

황제는 이지용을 보빙대사로 삼아 일본에 파견했다.

일본 거류민들이 일장기를 들고나와 「이또오」를 환송했고, 접대관 민
영환을 비롯한 고관들은 한성역에 나가 배웅했다.

며칠뒤 경운궁에 불이 났다.

밤 9시께 함녕전에서 발화하여 중화전등 여러 전각이 삽시간에 타버렸
다. 궁안에 있는 관청들도 의정부 등 서너군데를 빼고는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황제와 황태자는 이웃 미국 공사관으로 대피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옮기면 될터인데, 황제는 『대강만이라도 두달
안에 중건하라.』 엄명을 내리고, 경운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두궁을 재앙지지로 여긴 까닭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