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국립중앙박물관의 조기철거」, 「국보로 지정된 가짜총통 해제」,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지정과정에서의 뇌물수수」, 「 내부돔의
균열」,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 재평가」, 「4년여 동안 끌어온 경부고속
철 경주노선의 원만한 매듭」….
올 1년 만큼 문화재계가 시끌벅적했던 해는 찾기 힘들 것 같다. 일
부에서는 「문화재 수난의 해」라고도 했지만, 「문화재인사들의 힘이 이
렇게센 줄 몰랐다」는 말이 농담처럼 건네지기도 했다.
우선 「수난사」부터 살펴보자.
지난 6월 에는 「메가톤급」 폭탄이 터졌다. 지난 92년
8월 인양,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총통이라며 국보로 지정됐던 「귀함별
황자총통」이 사실은 인양 사실 자체부터 조작된 가짜라는 게 수사
결과 밝혀진 것.
이 사건은 우리 문화재지정과정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단적으로 보
여 주었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가 문화재위원회보다 먼저
유물을 살펴보는등 과잉관심 속에서 문화재위원들은 회의 30분만에 국
보로 지정해버렸다. 당시 국보지정을 의결한 문화재위원회 2분과 위원
8명중 총포류 등 전쟁유물전문가는 한사람 밖에 없었다. 이 일을 계기
로 은 문화재지정 때 전문가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
만, 아직 구체적인 제도개선은 시행되지 않았다.
7월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 지정과정에서 조사위원들이
한 후보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폭로돼 이 다시금 홍
역을 치렀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전원이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조사위원 중
한 사람은 구속됐다. 『이 기회에 무형문화재제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대두됐다. 일부 보유자들이 전수교육과정에서
돈을받는다는 소문도 그동안 끊임없이 나돌았다. 이 일을 계기로 문화
재관리국은 무형문화재제도 전반에 대한 관계자 여론 조사를 실시했으
며, 조만간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10월에는 일제가 만든 내부 돔에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관리를 맡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균열
이 지난 60년대에 황수영박사가 을 보수했을 때 이미 보고했던
것으로, 콘크리트 표면을 싸고 있는 모르타르층의 균열일 것으로 추측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생각외로 허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수난을 그 무엇보다 극명하게 드러내보인 것은 국립중앙박물
관의 조기철거(12월 완료)를 통해서였다. 새 박물관을 채 짓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앙박물관(구 총독부)을 헐어 박물관 기능을 반년가까이 정
지시킨 것은 상식 밖의 발상이라는 게 문화계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
었다. 일부에서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이같은 논리는 총독부와 중앙박물관을 혼동
했기 때문이다. 용산에 새 중앙박물관을 지은 뒤 총독부를 철거하라는
주장은 결코 총독부건물 철거반대가 아니었다.
중앙박물관을 하루빨리 개관하려던 는 결국 「시멘트독」으로
인한 유물손상 우려로 당초 개관 예정인 10월에서 2개월 늦춘 12월에
개관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진열장 외부의 「시멘트독」 수치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문화재관계자들에게 최대 희소
식은 경부고속철도 경주역사가 화천리로 사실상 결정됐다는 것이었
다. 지난 4년동안 끌어온 와 문화계인사들의 대립은 문화계의
논리를 존중하는 쪽으로 결판난 것이다. 경주도심 통과노선이라는 정
부확정안이 문화계의 광범위한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되고 결국 화천
리역사가 내정된 것에 대해 노선결정과정에 참여했던 교통-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꽃삽(고고학계)이 포크레인(개발론)을 이겼다. 문화재관
계자들의 힘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경주역사 결정이 앞으로의 문화행정에서 「야전
교범」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규모 개발이 필요할 때는 항상 그 지
역의 문화재보존이 고려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경주나 공주, 부
여 등 역사도시의 개발과 보존의 원칙을 세울 수 있는 「고도 보존법」
이 제정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의 주된 발굴로는 경주 사라리유적(4월), 금동신발이 출토된
나주 복암리고분(7월), 제사시설로 추정되는 공주 정지산유적(11월)
등을 꼽을 수 있다. 감은사 동탑 보수작업 때(3월)는 통일신라시대의
정교한 세공술을 보여주는 불상 등 사리장치가 발견됐다.
일제가 지정했던 503건의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남대문이
나 동대문의 문화재 지정 명칭을 각각 숭례문, 흥인지문으로 바꾸고,
백제 후기의 금동관세음보살입상 등 보물 6점을 국보로 승격시킴으로
써 문화재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남은 일제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는 사실도 올해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