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처럼 정겨운 모임에 나갔다. 그 옛날 대학입시에 실
패해 청진동에서 서로를 추스르며 만났던 푸근한 얼굴들이다. 훌쩍 25년
을 헤아리는 세월이지만 장소는 그때 그집 그주인이다. 주변이 빌딩숲
으로 바뀌었는데도 옛 모습 그대로다. 오랜만에 갖는 모임이어서 더욱
반가운 면면들이다.
노모를 걱정하면서 임지로 나갔던 친구는 3년만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영국신사」로 돌아왔다. 지방 현장소장으로 발령받아 곧 그만
둘 것만 같던 친구도 새 근무환경에 적응했는지 표정이 밝다. ,
중동을 1년이면 서너달씩 돌아다니는 친구도 패기는 여전하다.
얘기가 무르익어 아이들 교육문제에 이르자 다들 곤혹스러워한다.
이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지라 선뜻 옮겨 다닐 수 없는게 큰
걱정거리라고들 한다. 해외에서 공부해 영어는 앞섰지만 우리말, 우리
역사에선 처지는 아이, 주변 경조사를 뻔히 알고서도 참석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던 일, 가족들이 보고싶어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오는 사연….
어느덧 모두가 자상한 아버지들이다. 엄혹했던 「70년대 상황」
에 분개하던 열혈청년들은 이제는 자식들 학교생활을 염려하는 「한국의
40대」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전 증권사 지점장을 명예퇴직한 고교 동창이 자연 화제에 올랐
다. 『그 친구 앞으로 무얼 할거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가뜩이나
바람찬 광화문 네거리에 갑자기 몰아친 한파가 매섭다. 한 친구가 먼저
차를 타며 외친다. 『그집이 그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더 자주 만나자.』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해 본다. 늘 가족과 함께하고 있는 일상에 감사
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