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8일은 자민련 총재로서는 이례적인 날이었다.
평소 「세상에 특종은 없다」는 지론으로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김 총
재가 전주와 익산 등 전북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메가톤급 「폭탄선언」
을 그것도 충청권도 아닌 호남권 각 도시에서 한개씩, 하루에 두 개를
쏟아낸 것이다. 『후보가 단일화되면 반드시 야권이 반드시 승리하는데,
단일화는 될 수 있고 또 돼야 한다』는 야권후보 단일화론과 『대통령이
돼도 2년3개월만 하고 말겠다』는 2년3개월 한시 대통령론이다. 이 두
가지 발언 중 첫번째 것은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봄,
정상적이면 내년 10∼11월 후보등록 직전, 그것도 아니면 안할 지도 모
르는 김 총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결정사항 중 하나인 후보 단일
화이다. 하지만 두번째 것은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
다. 김용환 사무총장마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자민련 내부사정에 밝은 한 관측통이 『사무총장님이 그러
셨다면 혹시 총재님도 예상하지 못한 일 아닙니까』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나오자 마자 「한시 대통령론」으로 명명된 발언이 터진 것은 11월28
일 오후 를 방문한 자리였다. 50분 동안 연설을 하고 난 뒤 방
청객세 사람의 질문을 받았는데 문제의 질문은 마지막에 나왔다. 사회
자가 『한분만 더 질문 받겠다』고 하자 손을 든 한 사람이 『총재님은 내
각제를 주장하는데현재 대통령은 임기 중 개헌은 못하겠다고 한
다. 그렇다면 만약 야당측 대통령 후보로 총재님께서 추천이 된다면
내각제를 주장하시는 데도출마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다소 뜻밖이었
던지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당직자들도 웃었고 기자들도 웃었다.
● 마지막 질문에 터져나온 뜻밖의 「폭탄발언」.
김 총재는 10초 정도 뜸을 들인 후 『야권이 통합돼 통합된 야권에서
네가 대통령 출마를 해라 했을 때 받겠느냐 안받겠느냐 하는 질문이지요』
라고 운을 뗀 뒤 『내년에는 상황이 미숙하기 때문에 내각제가 어렵다.
우리는 내년에 안되면 내후년, 또 내후년 끈질기게 인내를 가지고 노력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현행 대통령선거법에 의해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질문이지요』라고 재차 확인하
고는 다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때 가봐야 알겠는데요』라고 했다. 장
내는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김 총재의 발언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은 이 정도 하고 끝낼 줄 알았
다. 그러나 김 총재는 곧바로 말을 이어 『그러나 한가지만 제가 확실하
게 말씀드릴 것은,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 만약에 제가 내년에 대통령이
된다면 그때부터 2년3개월이라는 15대 국회 임기가 있어요. 그 말미에
가서 내각책임제로 바꿔놓고 그만둬도 그만둘 겁니다. 제가 즐겨 인용
하는 프루스트의 시가 있어요. 나는 가야할 몇 마일이 남아 있다. 잠들
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만 한다. 제가 그만두기 전에 몇 마일이라는 것
이 내각책임제입니다. 그러니까 힘 좀 보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며
연설을 맺었다.
김 총재의 이 2년3개월 발언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서 두단계쯤 더
나간 것이다. 우선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을 강하게 전제했고 또 거기
서 이긴다는 것을 전제했다. 물론 만약이라는 보완장치를 세번이나 반
복했지만 숫자까지 2년3개월로 정확하게 못을 박은 것을 보면 생각을
깊이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JP가 과연 내년에 나올까?」 하는 선
에 머무르고 있는 시중의 정치토론을 왜 이렇게 뛰어넘었을까. 후보 단
일화야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대목은 누가 물어보는 사람도 없
는데 왜 자발적으로 말을 꺼냈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 정치권에 던진 선문답이라는 사람도 있
고 국민들으라는 소리라는 사람도 있었다. 또 사람들 쪽을 보
고 했다는 사람, 국민회의 사람들에게 했다는 사람, 자기 휘하 자민련
사람들에게 했다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 『과 국민회의를 향한 말 같다』.
그러나 국민보다는 국회의원을 향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개
헌을 위해서는 15대 의원들의 동의가 가장 급한 것인데 만약 개헌을 해
버리면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 위
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사실 대선이 1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이런 복잡
한 임기 계산을 알 일반 국민도 많지는 않겠고 개헌논의로 득볼 것도
없는 시점이다.
정치권으로 한정한다면 대내용보다는 과 국민회의에 각각
다른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현재
당내에는 부총재 같은 사람도 조용하게 수행(이날도 그랬다)하
고 다닐 정도로 특별히 신경쓸 일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는 『내 힘이 있는 한 내각제는 반드시 관철할 것이니 포기하지 말고 기
다리다가 때가되면 같이 일하자』는 메시지를, 또 국민회의 사람들에게
는 『야권후보 하면 DJ만 있는 것으로 생각지 말라. 또 내각제를 위해서
는 내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메시지를 이번 선언 속에 담으
려 했던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정확한 속마음은 확인할 길이 없고 자민
련 핵심 측근들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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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헌을 개인 소신으로 재단하겠다니…"
제정파와 시민들, 「한시 대통령」발언에 비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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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총재의 「한시적 대통령론」에 대한 반응은 비판이 주
조를 이뤘다. 한마디로 헌정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상이라는 견
해들이다.
헌법이 정한 나라 체제와 대통령의 임기를 사적인 정치소신에 의해
줄이거나 재단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라는 지적들이다. 의
한의원은 『2년3개월 동안만 대통령을 하겠다는 김 총재의 발언이야 말
로 평소 JP가 대통령제 폐해이며 내각제 도입의 논거로 들고 있는 절대
권력자의 편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한시 대통령론은 자민련내에선 『우리 총재님은 내각제를 위해
보장된 임기까지 포기하겠다는 결연하고도 도덕적인 의지를 보인 것』이
라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민련 문밖을 나서면 크게 달라
진다. 『JP 말대로 한다면 내년 선거는 5년짜리 대통령과 2년3개월짜리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되는 거냐』는 비아냥에 가까운 비판도 있다. 내
각제를 향한 JP의 일편단심은 알겠지만, 나라 일이 개헌만 있는 것이
아닌데 「개헌용 대통령」을뽑으라는 거냐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개헌 논의의 소모성이다. 김 총재가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하면 선거 1년 전인 지금부터 유권자를 포함한 나라 전체가 개헌을
제1의 국사로 삼아야 하고 그 개헌론은 15대 임기 말까지, 그러니까
3년6개월 정도 나라를 뒤엎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유혈이 낭자
했던 우리의 불행했던 개헌사가 모양을 달리하면서 되풀이돼 국가의 에
너지를 낭비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시민들도 대체로 어리둥절한 반응들이다. 자신을 JP 팬이라고 밝힌
30대 한 기업인조차 『또 헌법을 바꾸기 위해 5년 임기로 뽑힌 대통령이
2년3개월만에 물러난다면 잘은 모르지만 또 피곤한 일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농담으로 한 건지 진담으로 한
건지 그 진의부터 알아보아야 겠다』는 식의 반응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