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 이문우씨(62)가 「필로폰 장사」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는 사실이 알려진 3일, 주변에는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나왔
다. 과거 이씨와 함께 일했던 검사와 동료 직원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그가 그런 일을…』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필로폰 수사의 「산 증인」으로 불려왔던
인물. 재직당시 그의 별명은 「경부선」. 서울지검과 부산지검만 번
갈아 근무하며 필로폰 수사를 전담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94년 1월 별정직 6급으로 정년퇴직하면서 그는 『24년간 내 손으로
잡아넣은 「뽕쟁이」가 5백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재직시 압수
한 필로폰이 1t은 될 것이라고 주변에선 말하기도 했다.

필로폰 제조-밀매 사범들의 「족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그는 자백
을 받아내는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입을 굳게 다물던 필로폰 밀조-밀매 사범들도 그와 20∼30분을 「독
대」하고 나면 『검사님, 협조하겠습니다』며 고개를 떨군것도 한 두번이 아
니었다고 한다. 유한농장 사건, 피터팬 사건, 동원목장 사건 등 지금도
마약수사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형 사건들엔 빠짐없이 그의 이름이 등
장했다.

그가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들자 특수부 검사들도 종종 그
를 수사팀에 차출했다. 퇴직 후에도 마약 관련 일을 계속한 이씨는 경
찰관들을 상대로 외부강연에 나서기도 했고 에도 자주 불려갔다.

밀조기술, 마약사범 족보 등에 대해 「자문」에 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론 불운도 적지않게 겪었다. 그에게 구속당
한 필로폰 사범들이 끊임없이 협박전화를 걸어와 그의 전 부인은 10여년
간 심장병을 앓기도 했다. 그 자신도 마약범죄자를 쫓다 흉기에 위협당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씨 부부는 결국 파경에 이르렀고 그는
최근엔 연변출신의 조선족동포와 재혼해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왜 필로폰 장사에 뛰어들었는지는 수사과정에서도 정확
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내가 쇠고랑을 채운 마약사범 가운데 필로폰을 끊은 사람을 본 것
은 딱 한명 밖에 없다.』 퇴직후 펴낸 「마약-필로폰이란 이런 것이다」란
책자에서 이렇게 적은 이씨. 평생을 필로폰과 싸웠던 그 자신도 결국 필
로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