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 있어도 번번이 "나이가 많아서"…취업률 13% ###.

백길제씨(43)는 대한항공 자재관리 팀장이었다. 몇년째 진급에서
누락되면서 94년2월 사표를 제출했다. 아내는 만류했지만 진급 스트
레스로 인해 뇨단백까지 생기자 동의했다. 마흔한살이었다.

그후 2년9개월 동안 백씨가 재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
담을 한 예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였다. 항상 마지막 순간에 나이가 문제가 됐다. 기업들은 백씨가 재
직 당시 담당했던 차세대 전투기사업 관련 항공기 부품 구입 업무가
「아직은 쓸모 있는 재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나이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곧 중학교에 들어갈 아들녀석의 생활기록부 보호자 직업란에「무
직」이라고 써야하게된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백씨는 요즈음
친구와 함께 무역중개상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재취업의 「꿈」을 버리
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일할 능력도 있고 정열도 있습니다.마
흔셋이 늙은 나이입니까?』.

백씨의 경우 뿐만이 아니다. 요즈음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한
조기퇴직자들이 재취업하는 경우는 희귀한 케이스에 속한다. 노동부
가 실업급여 실시 첫달인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동안의 추이를 집계
한 바에 따르면 실업급여 신청자 5천2백87명 가운데 재취업한 경우는
모두 6백95명으로 13.1%에불과하다. 그나마 전에 있던 직장에서 받던
월급 만큼 받고 재취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 절반 이하의
「감봉」을 감수하고 재취업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조기 퇴직자들은 각종 자격증을 획득해 재취업을 시도
거나 신문 광고에 나오는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그마저
여의치않다. 한번도 직장을 그만둔다는 전제하에 기술을 익히거나 창
업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호씨(42)는 대일전선 품질 관리부 과장으로 재직하다 작년
9월 소속과가 없어지면서 졸지에 퇴직했다. 그후 1년여동안 10여차례
이력서를 내고 재취업을 시도했으나 사무실 밖은 사무실 안에서 보던
「그거리」가 아니었다.

대학 산업공학과 졸업후 줄곧 품질관리 업무만 해온 김씨는 내세
울만한 「기술」도 「특기」도 없었다. 지난달에는 신문 구직광고를 보고
화공제조회사와 자동차부품업체에도 서류를 냈지만 감감 무소식. 김
씨는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취득하고 있는 ()
인증 심사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지난 9월 자격증을 취득, 노동 부 취
업알선 센터와 한국경영자총협회 고급인력센터에 취업을 의뢰했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요즘은 부인에게 용돈을 타쓰기도 면목이 없어 처남의 사업을 도
와주고있다. 김씨는 『현직에 있을 때 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
았는지 정말 후회된다』며 『그동안 해온 품질관리 업무라면 급료는 문
제도 아니다』고 했다.

번듯한 학력이나 그럴듯한 경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경우도 있
다.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다 3년전 퇴직한 이성진씨(56)는 퇴직2년
이 지나면서 기필코 「동급의 회사에 재취업해」 재기하리라던 처음의
생각이 달라졌다.

『집에 있다가 보니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생기고 그때마
다 심한 자책감에 시달려 기준을 낮추기로 했지요.』.

이씨는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건물 경비원으로라도 일
하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고 연줄을 찾았다. 그러나 경비원으로 고용
되려던 마지막 순간에 「대졸-고소득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고용
주는 『그런 사람은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며 정중히 사절했다.

김종각 노총 선임연구위원은 『조기퇴직으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기업사정도 이해가는 바는 있지만 현재 조기퇴직 대상자들은 과거 고
도성장기의 일등공신들이다. 그렇다고 인정주의에만 호소할 수는 없
으며 기업과 국가가 공동 부담으로 퇴직전에 직업훈련을 시키거나 창
업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