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염없는 제국(16) /////.
고영근은 본디 민영익댁의 청지기였다. 충주 사람으로 중전 민씨가 장
호원에 은신하고 있을때 시중을 들어 졸지에 버슬길이 열렸던 터이다.
황제가 총애하는 상궁 엄씨와 가까운 사이였고, 독립협회 발기인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얼마전 보부상들은 남대문 밖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회장에 이기동,
부회장에 고영근을 뽑았다.
이들은 울굿불굿한 겉옷에 솜방망이를 단 패랭이를 쓰고 물미장을 휘
두르며 기세를 올렸다.
물미장이란 지게를 받치는 작대기인데, 보부상의 상징이다. 8각으로
깎고, 용의 문양을 새겼다.
나중 고영근은 황국협회가 독립협회를 습격한후 깨닫을 바가 있어 부
회장을 그만두고, 다시 독립협회에서 활동한다.
『저들은 물불 가리지 않는 부랑인들이오. 조병식, 심상훈, 민영기, 그
리고 악명높은 홍종우도 배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는 얘기요. 쌈패를
동원해서 보신들을 하겠다니 한심한 노릇이오.』.
이상재의 개탄이었다.
이 모임이 있은지 며칠뒤 느닷없이 서재필은 중추원 고문에서 면직되
었다.
독립협회의 요구조건 가운데 외국의 고문을 없애라는 조목이 있었다.
따라서 미국 국적을 가진 서재필의 면관은 명분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기피인물에 대한 국외추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자 「와신턴」에 사는 처가로부터 장모가 위독하다는 전보가 날아들
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황제의 밀지를 받은 주미공사관이 미국무성
에 양해를 구하고 거짓 전보를 쳤던 것이다.
의심이 들긴 했으나 얼른 확인할 방도가 없기도하여 서재필은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출발 준비를 서두를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아내는 남편의 신변을 걱정하여 귀국할 것을 졸라대고
있었다.
처음 서재필은 3년간의 계약으로 고문을 맡았다.
「알렌」공사는 조선정부에 교섭하여 잔여 기간의 봉급을 타내 서재필에
게 주었다. 다행히 집도 쉽게 작자가 나섰다. 어느 영국상인이 내부를
양식으로 꾸민것을 취했던 것이다.
『그 전보는 위계요. 우리가 저지운동을 벌일테니 떠나지 마시오.』.
분개한 협회 간부들이 간곡히 말렸으나 서재필은 이미 단념을 하고 있
었다.
황국협회의 출현에 다시한번 정나미가 떨어진 것이다. 황태자가 찬조
금으로 1천원을 하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서재필를 보는 세간의 눈도 두갈래였다.
열렬한 지지층이 있는가 하면, 완고한 양반가 중엔 갑신년의 역적으로
백안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다 서광범은 미국공사로 나가버렸고, 서재필을 도와주던 이완용,
이윤용 등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남는 것은 황제와 수구 중신들의 증오와 적대감뿐이었다.
서재필은 이듬해 봄, 인천에서 미국 상선편으로 미국에 돌아간다.
장면을 종로에서 열린 관민공동회로 옮긴다.
독립협회는 미리 정부 요인들에게 초청장을 냈지만, 한사람도 나타나
지 않았다.
윤치호등이 박정양과 만나 관민합동회에 대한 찬동을 얻어냈던 터이
다. 개회 시각이 지나자 수천 군중은 대신들을 지탄하기 시작했고, 협
회 간부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윤치호, 이상재등은 대표를 뽑아 정부 요로에 보내 참석을 독촉했다.
한참만에 참정 박정양과 찬정 이종건이 나타나 개회사만 하고는 돌아
가 버렸다.
격분한 간부들은 대신들이 나오기까지 집회를 계속할 것을 선언했다.
천막이며 연단을 치우지 않고, 밤새 수십명의 장정들이 회장을 지켰다.
다음날 다시 군중이 모여들었고, 연사들이 번갈아 외세 배척과 정부 규
탄의 연설을 계속했다.
오후 네시쯤 돼서 박정양, 이종건, 서정순, 고영희, 한규설, 이채연
(한성판윤) 그리고 전임대신 민영환, 심상훈, 민영기등이 한꺼번에 나
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