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저녁, 퇴근 인파가 추운 가로수 밑을 종종걸음쳐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을 금방 세수를 하고 나온 아내를 만나 「한국
가요제-- 빅3 콘서트」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거슬러 향하는 기분은
썩 상쾌했다.

나는 양희은과 송창식과 윤형주 김세환의 노래를 듣고 부르며 청년
기를 맞았다. 여섯살 아래인 아내는 과 송골매와 를 듣고
부르며 청년기를 맞았을 것이다. 그 시절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는 건 무
엇일까.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할 때,
아주 짧은 기간동안 유별나게 다양하고 인상적인 추억들이 주체할 수 없
을 정도로 축적되어 가던 청년기로 그 노래가 훌쩍 데려다 주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를 추억하고 그 시절의 기억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는 첩
경은 아마도 조용히 그때의 노래들을 읊조리는 일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요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 사회적으로나 하나의 백그라운드 뮤직과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
한편에 뚜렷한 그림자로 남아 있으면서 언제라도 그시절의 개인적, 사회
적 정서를 되짚어 보게 한다.

내가 본 「한국가요제-빅3 콘서트」는 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던 감동깊은 무대였다. 70년대의 연인 양희은은 「아침이슬」 「하
얀목련」 「늙은 군인의 노래」등의 주옥같은 노래들로 공연장을 가득 메운
중장년층 관객들의 시계를 다시금 가슴앓이 하던 젊은 시절로 되돌려 놓
았다.

「창밖의 여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모나리자」 등으로 장식된 80
년대의 공연은 30∼40대의 주부들이 1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오빠!」를 연호케 만든 축제의 마당이었다.

또 「핑계」 「스피드」 등을 열창한 90년대의 는 자유분방하고
거리낄 것 없는 신세대들의 감성을 온몸으로 연출해냈다.

「한국가요제-빅3 콘서트」는 결코 가요의 시대적 의미만을 강조하지
는 않는 것이었다. 물론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
며 제가끔 그때 그 시절의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으로 관객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라는 커다
란 공간 안에서 시대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길거리나 지하철 안에서 어깨라도 부딪치면 서로 인상을 찌푸렸을
사람들이 그 안에서는 이웃보다 더 친한사이가 되어 서로 손을 마주잡고
무대를 향해 환호했다. 옆에 앉은 사람의 박수소리와 따라하는 노래소
리가 정겨웠다. 어쩌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
으로 목례를 보내는 모습이 정겨웠다.

공연이 무르익어 갈수록 「한덩어리」가 되어가는 관객을 보면서 이
런 장관을 내가 언제 경험해 봤던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객석은 연
일 가득 가득 찼고 관객들의 합일도 매회 계속되었다. 대규모 콘서트에
가보지 않고서는 노래라는 것이 그토록 대단한 거라는걸 실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았고 대화 한 마디 주고 받지 않은 대중이
노래라는 것 하나로 마음을 활짝 열고 완벽에 가까운 소통을 이루어낼수
있다니….

우리사회는 혹시 그런 대중가수와 대중가요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소홀히 해왔던 것은 아닐까. 가수라는 것과 노래라는 것의 위력이 어
느 정도인가를 비로소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마련해준 조선일
보와 세종문화회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