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염없는 제국⑫ ++++.

이유인의 농간이 들통난 것은 일본공사관의 정보망에 걸렸기 때문이다.

변리공사 「가토 마스오」가
『법부대신이 부산에서 「러시아」의 신임공사와 절영도 조차문제를 의논
하고 밀약을 맺었다고 하니, 그 진상을 밝혀주기 바란다.』.

이런 항의공문을 외부대신 박제순앞으로 보내왔던 것이다.

사실이라면 법부대신의 월권행위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유인이란 자가
어엿한 양반에 들지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재간과 술수를 부려 대신 반열
에 오른 것부터 마음이 상하는 노릇이었다.

황제께 보고하고 조사에 착수하자, 사방에서 이유인을 규탄하는 상소
가 올라갔다.

김홍륙의 치죄에 이은 이유인의 수난은 문벌을 중시하는 사대부들이
모처럼의 호재를 만나 일대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일개 한미한 시골 유생이 무당에 빌붙어 내전을 드나들며 신분과 학
덕에 어울리지 않는 출세를 하였다. 벼슬이 높아지면서 무당, 판수, 점쟁
이, 남사당패 따위를 끌어들여 궁중의 기강을 어지럽게 했으며 임금의 총
명을 흐리게 했다. 마침내 칙명을 날조하여 외국의 사신을 기만하기에 이
르렀다. 이런 간신배를 처단하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서지 못할 것이다.』.

이런 규탄은 민심의 소재를 대변한 것이었다.

이유인은 조사에서 구구한 변명을 늘어 놓았으나, 임금을 속이고
조칙을 위조한 죄과를 소명하지는 못했다.

『…폐하께선 나의 행동이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계실줄 믿소
이다.』.

이유인은 후임 법부대신 신기선의 심문에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런 넋
두리를 했다.

김홍륙을 제거하여 조금이나마 성려를 덜어드렸다는 뜻이다. 결국 이
유인은 고금도로 유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국정의 혼미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정국의 흐름
에 초점을 맞춘다면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의 여론이 정치적 영향
을 끼치게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립협회의 표적이 되면 살아남기 어렵다, 협회 사람들과 지나치게 가
까워지면 황제의 미움을 받는다, 사모관대파와 양식예복파의 싸움이고,
그통에 새우등 터지기 십상이다.….

이런 말들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의정 심순택은 노환을 이유로 사직서를 내고 향리로 내려갔다.

진독 사건의 정치적 책임을 진 것이다.

후임엔 황제가 신뢰하는 특진관 윤용선이 임명되었다.

각조 판서와 규장각 학사를 지냈고, 모나지 않는 신중한 처신을 하는
사람이다.

이때 정부의 상부기구는 지난날의 의정부와 신식 내각을 절충한 것이
었다.

의정과 참정이 각 1명, 궁내부대신에서 농상공부대신까지 8부대신을
두었고, 이밖에 찬정 5인, 참찬 1인이 있었다.

찬정은 각부대신이 겸했다.

의정이 정부의 최고책임자지만 황제의 고문 비슷한 것이고, 실질적
인 수상은 참정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제도자체가 세력이 뒤엉킨 과도적 성격임을 말해준다.

이럴 즈음 독립협회와는 별도로 황국중앙총상회라는 단체가 조병식
의 뒷받침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군수 구완희가 주선하여 서울의 시전 상인들을 규합한 것이다.

주된 목적은 왜군상인들의 상권침해에 대항하여 조선상인의 권리를
지키자는데 있었다.

회장엔 조병식을 추대했다.

참정 겸 외부대신이 상인단체의 장이 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
다.

조병식은 이런 단체가 식자층을 중심으로 한 독립협회를 견제하는데
한몫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나중 그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지만.

이 어간에 서재필에 대한 압력이 가중된다.

황제켠의 눈으로 보면 서재필의 존재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원흉이
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서재필을 역신으로 규탄하는 상소도 더러 나왔으나, 미국의 시민인지
라 누군들 손을 댈 묘책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