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염없는 제국⑥ ////.
대원군은 유언을 남기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면 목숨을 내놔야지.』
이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마치 황제에게 한 말같았다. 대신들을 향한 질
책인지도 모른다.
대원군은 숱한 천주교인을 죽였다. 그 원혼들을 달래지도 못했다.
아들과의 불화는 숙명이었는가. 아들을 임금으로 앉힌건 대원군이오,
민중전을 고른건 부대부인이었다. 안동김씨 세도에 학을 뗀 그는 무릎을
치며 찬동했던 것이다.
시아버지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며누리가 사라지자, 내외가 앞서거니 뒤
서거니 이승을 떠났다. 운명의 희롱인지 모를 일이다.
헌데 대원군이 숨을 거두던 시각, 「아관파천」후의 실력자 학부 협판 김
홍륙이 자객들에게 피습을 당했다.
김홍륙은 「러시아」공사라는 호랑이를 빙자하여 여우의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외부대신 민종묵, 내부대신 남정철, 경무사 이충구 등도 김홍륙을 통한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러시아」공사관 경내에 있는 그의집은, 성시
를 이루었고,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갔다.
김홍륙은 황제앞에서조차 언어태도가 방자했다.
환궁한뒤로 황제는 차츰 염증을 내며 김홍륙을 미워하게 된듯 했다. 그
러나 「러시아」정부가 두려워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궁리끝에 황제는 규장각 학사 이재순에게 은밀히 분부했다.
이재순은 중추원 의관 송정섭과 모의하여 믿을만한 장정 너댓을 고용했
다. 유진구, 이봉학, 김재호, 이범석 등이었다. 이들은 당일, 돈의문 안
궁동의 주막에서 술을 마신다음, 경운궁의 북문 근처에서 대기했다.
김홍륙은 대개 저녁 느지막해서 퇴궐하여 지척의거리인 「러시아」공사관
에 귀가하곤 했다.
그가 북문을 나와 담장을 끼고 걷기 시작하자, 이봉학등 넷이 뒤를 밟
았다. 김홍륙은 순검 한 사람만 경호를 불이고 있다.
『누군가!』
순검이 묻자.
『우린 함께 술마시러 가는 길이오.』.
이봉학이 대꾸하기가 무섭게 셋이 단도를 뽑고 김홍륙에게 달겨들었다.
육혈포를 꺼내려는 순검도 단도에 찔려 쓸어졌다.
김홍륙은 피를 흘리며 북문앞으로 도망쳤다.
심상치 않은 소란에 북문 파수꾼들은 재빨리 문을 닫고 있었다.
『문열어라! 아관에 있는 김협판이다!』
김홍륙이 미치듯이 내질렀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두워서 뉘신지 모르겠소.』
마침 이웃 영국공관에서 일하는 조선사람이 등불을 들고, 앞을 지나다
가, 김홍륙을 알아보고 등불로 얼굴을 비춰 주었다. 문이 열리고, 김홍
륙은 가까스로 대궐안에 기어들어 목슴을 건졌다. 괴한들은 물론 도주한
뒤었다.
다음날 크게 놀란 황제는 『경무의 직책이 어찌 이지경인가? 범인을
3일안에 체포해야 할 것이다. 경찰의 태만과 해이가 말이 아니다.』
내부와 경무청을 꾸짖었다.
경찰이 주막을 탐문하고 괴한들의 꼬리를 잡았으나 겨우 유진구 한사
람만 체포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박재순댁쯤 은신했을 것이다.
유진구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변변히 심문도 하지 않고 서둘러 판결을
내린 것이다.
경무사 이충구는 면직되고 동학군 진압에 공을 세운 김재풍을 후임에
기용했다.
황제는 「러시아」공사관에 시종을 보내 김홍륙을 위로했다.
대원군과 부대부인은 미리 정해둔 공덕리 별장 근처 묘지에 합장되었다.
과연 부인이 원했는지 어쩐지는 알수 없다.
발인하는 날, 운현궁 주변 동민들이 다투어 상여 메기를 자청했다. 문
상개들이 운집하자, 순검들이 나와 동민들이 상여를 메지 못하게 제지했
다.
죽은 뒤에도 대원군의 중망을 시기하는 사람의 소행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