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 부품회사를 경영하는 씨(49·서울 강남구 청담동)
는 지난 7월10일 법원으로부터 「8억여원의 빚을 갚으라」는 소송이 제기
됐다는 소장을 받았다. 소송을 낸 측은 은행. 『어머니 서모씨가 연
대보증한 빚 8억여원을 갚지 않고 사망했으므로 상속자인 자식들이 대
신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그제서야 사업을 하던 아버지(77)가 지난 85년 은행에서 돈
을 대출했고, 어머니가 연대보증을 섰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생
존해 있지만 사업에 실패해 파산한 상태. 은행측은 작년 5월 6일 어머
니가 사망하자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연대보증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 것
이다.

우리 민법에는 재산뿐 아니라 빚까지도 자녀에게 상속되도록 돼있
다. 다만 자식이 부모의 빚을 갚고 싶지 않을 때는 상속자가 된지 석달
안에 가정법원에 빚을 갚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의사표시
가 없으면 자동으로 빚을 물려받게 된다.

부모가 파산을 한 상태여서 상속을 받을 것도 없는 이씨 4남매는
그런 법규정이 있는지 모르는 채 석달의 기한을 넘겨 「빚만 상속받게」 된
셈이다.

이런 불합리한 조항이 있을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든 이씨는 수소문
끝에 이 법조항이 일제시대부터 있던 구민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 란사실
을 알았다.

더구나 그 일본조차 「3개월이 지났더라도」 빚 상속을 포기할 수 있
도록 법원이 판례를 만들어 자녀들의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잘못
된 제도를 고쳐보기로 결심한 이씨는 지난 8월 이석연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원에 위헌심판을 신청했다.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 34단독 한창호 판사는 31일 이씨의 신
청을 받아들여 이 민법규정의 위헌여부를 심판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
헌심판을 제청했다. 아직 헌재의 최종 결정이 남았지만 이씨의 「불합리
한 법에 대한 저항」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