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선승리가 다케시타파 완전부활로 연결됐다. 파벌이 일본
을 좌우하는 93년 이전 파벌정치판이 재연된 것이다. 일본을 좌우하던
주인공에서 4위파벌로 전락했던 다케시타파(현 오부치파). 총선뒤 의원
88명을 확보, 미쓰즈카, 미야자와, 와타나베파를 단번에 제쳤다.

배후거물 다케시타 노보루 전총리가 정치전면에 나설 환경도 마련
됐다. 다케시타는 80년대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정권복귀 꿈을 버리지
않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그 친구당분간 걸레질이나 시키라』며 강하게 견
제했으나 85년 「창정회」, 87년 다케시타파인 「경세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주식스캔들인 리쿠르트사건 등으로 파벌영수 다케시타 총리
가 물러나자, 파벌은 오부치파로 개칭됐다. 93년 주도권 싸움에서 밀린
오자와 이치로의 탈당, 94년파벌해체 결정에 따른 헤이세이연구회로의 개
칭 등 수모는 이어졌다.

그러나 96년10월 총선으로 부활했고, 보다 넓게 일본을 장악하게
됐다. 하시모토 류타로총리, 오부치 게이조중의원의장 내정자, 사이토 주
로 참의원 의장, 가지야마 세이로쿠관방장관을 거느린다.

오자와 당수, 와타나베 고조 중의원부의장 내정자 등 신진당 핵심
도 다케시타파 출신이다. 자민-신진 양당구도를 타파하겠다는 하토야
마 유키오민주당대표마저 다케시타파를 거쳤다. 다케시타파는 이번 개각
때 최다 장관자리를 얻게된다. 그래서 28일 밤 프린스호텔에서 열
린 다케시타파 파티에서는 단번에 정치헌금 3억엔이 모였다.

【동경=이혁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