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농촌' 가속…동포떠난 농촌 한족들이 메워 +++
++++ 도시는 `한국화' 열풍…향락-범죄등 부작용 ++++
+++ 북경인구 0.3% 조선족, 가라오케 90% 소유 +++.


중국의 저명한 민족문제 연구가인 조선족 학자 황유복 교수(53·중
국 중앙민족대·민족사 전공)가 최근 주최의 학술회의 참석차 한
국에 왔다. 그는 중국내 조선족사회가 요즘들어 중국이주 1백여년만
에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발표, 상당한 충격을 주고있다.

--연변 조선족이 도시로 대규모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90년대 한국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
다. 조선족 총수의 10%인 20만명 가량이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족들이 떠난 농촌에는 한족등이 들어와 산다. 이
는 그만큼 조선족의 주거지가 축소됨을 의미한다. 현재 계획중인 북한
두만강 개발계획이 실현되면 연변의 조선족 인구비례는 총인구 대비 현재
의 40%에서 20%이하로 축소된다. 인구의 분산이 가속화될수록 한족과
의 동화속도도 빨라진다.』.

--조선족들이 중국에 동화되는 것이 문제인 이유는.

『중국어도 알고 한국어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야 중국의 국가이익에
도 부합한다. 만주족이 동화됐는데, 만주족은 원래 중국인들과 문화
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족은 문화적으로 많이 다르
고 우리 부모들이 이문화를 지키려 애썼는데 동화되면 많은 문제가 파생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인가.

『우선 민족교육에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도시로의 급속한 인구
전출은 농촌의 붕괴를 의미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소학교는
85년 4백19개였는데 95년에는 1백77개로 줄었다. 중학교는 1백18개에
서 49개로 줄었다. 이는 한국어를 할줄 아는 조선족의 감소를 의미한다.』.

--한국업체들의 진출이 조선족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않았는가.

『소득을 늘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부정적인 결과
도 초래했다. 중국에서 연변이 「한국화」된다는 비판이 나올 경우 「한
국화」라는말 속에는 향락풍조나 고물가현상 등도 포함된다. 향락풍조
의 전파는 심각하다. 가라오케바의 급속한 증가가 그 상징이다. 연길
의 가라오케바들이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것들이지만 조선족들도 자주
찾는다. 가라오케바의 경우 여급에게 주는 팁만 2백원(한국돈 2만원가량)
이다. 중국에서 정교수 한달 월급이 8백원이다. 그런데 가라오케바에
가서 술 한번 먹고 1만∼2만원씩 쓰고 나온다. 일상생활에서도 조선족
들은 과시와 낭비들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벼농사를 하는 조선족들이
옥수수 농사를 하는 중국인들보다 잘 살았다. 요즘에는 조선족들보다
중국인들의 저축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북경등 대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들의 상황은.

『북경인구 1천1백만 가운데 조선족은 3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북경에등록된 가라오케바 1백80개소 중 1백60개소가 조선족 소유이다. 이
들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물론 농촌출신 조선족들이다. 올봄
북경 당국에서 범죄타격운동을 벌여 매춘부를 구속했는데 이중 3분의 1이
조선족이었다. 옛날에는 조선족 여성들이 북경으로 관광갈 때 한복을 곱
게 차려입고 조선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녔다. 그런데 요즘 북경
에서는 조선족 여성 하면 몸파는 여자로 통할 정도이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농촌에서 장가를 못가게 된 청년들도 도시로 진출하지만 대부
분 범죄로 빠진다. 현재 흑룡강, 연변, 길림, 요령등 4개파의 조선족
범죄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족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우리 부모들이 처음 만주땅으로 이주해왔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
다. 당시 중국인들은 조선족들이 일본 군국주의를 따라 들어왔다며 불
신했다. 일본측은 독립운동을 벌이는 조선족들을 가장 심하게 탄압했다.
요즘 중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에
서는 불법체류, 선상반란 사건 등을 이유로 조선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북한은 북한대로 조선족들이 한국과 가까이 지낸다며 꺼리고 있다. 결
국은 조선족 자체의 노력으로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
선 한국어를 잃지 않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교육기관의 조선족
청년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취업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이 민간차원에서 조선
족의 교육을 지원해 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