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가 있는 풍경(4) ++++++.

의사와 함께 `커피 스토리'에 갔던 이래,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곳에 출근했다. 아프다고 회사를 결근한 적은 있어도 여섯달을 휴무도
없이 꿋꿋하게 다닌거다. 점심을 광화문 회사앞에서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러 한강다리를 건너 흑석동까지 간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래
도 간다. 사랑은 아무리 먼 길도 오래 참고, 화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슨 일 하시는 분이세요?".

그녀는 정말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던 날,
그녀는 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다.

"아, 전 신문사에 근무합니다".

더욱 더 이해가 안가는 표정. 그 바쁜 신문사에 있는 사람이 점심시
간내내 죽치고 있고 저녁때는 거의 틀림없이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이다.
아무일 없이 멍하게 앉아서 "아, 난 우리 신문사의 여성잡지 부서에서 일
하기 때문에 좀 자유로운 편입니다. 물론 마감때는 가혹하게 밤을 새워
야하지만".

석달째부턴 은근히 그녀가 그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가 들어와서
앉을라치면 아예 주문이 뭐냐 묻지 않고 `아메리칸?'하는 한마디 뿐이다.
늘 그가 마시는 걸 새삼 러시안(이런 커피가 있긴 있나?)으로 바꿨을리
없다는 확신아래. 손님이 없을 때는 종종 그의 건너편에 앉아 대화를 나
눌때도 있었다.

"그 잡지 봤어요. 인터뷰 기사를 아주 재미있게 쓰시던데요".

놀랍게도 그녀는 그가 망쳤다는 기사만 골라서 좋았다고 칭찬해 댄다.
대개 서너명의 이런 저런 사람을 인터뷰하고 두개 정도의 기획기사를 쓰
는데 그가 있는 힘을 다 바쳐 일구어 낸 기사는 아예 언급도 안했다. 실
은 그때부터 두사람은 감각과 취미가 다른 사람이라 뭉치기 힘들다는 걸
알아야 했지만, 사랑은 원래 앞이 안보이고 여자가 머리털끝부터 발톱때
까지 온통 핑크빛으로 보이게 되는 법. 넉달째부턴 일주일에 한번씩 바
깥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데이트라고 이름붙이기엔 어딘가 쑥스러운, 걸으면서도 꼭 한발짝 떨
어져 다니는 그런 만남. `커피 스토리'는 그녀의 이모가 하는 집인데 원
래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자기조카가 휴일을 주장하자 당황했던 모양이
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그곳을 들락날락 거리는 놈씨들
수가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부동산 가게 아저씨. 자칭 사업가 청
년 등. 가게안에서 부딪쳤던 그런 남자들 숫자만도 예닐곱을 됐다. 그
런나 신분이 확실하다는 것은 이럴 때 대단한 힘이 된다.

스물다섯 나이가 꽉 찬 여자애가 되도록 유부남이 아닌 남자와 눈길
이 맞길 바라는 것이 당연지사. 그녀 이모의 비호 아래 다섯달째부턴 일
주일에 이,삼일씩 극장 및 공원 데이트가 계속되다가 결국 호텔 데이트로
연결, 여섯달째엔 드디어 오늘날의 오피스 동거가 시작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