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한 해 평균 고소·고발 건수가 이웃 일본의 무려 40배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 중 무고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일본의 4백배나 된다
하니 고발 대부분이 사실과 다른 무고인 셈이다. 더불어 살면서 서로
뭣인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앙심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 된
다. 우리 한국 역사 이면을 돌이켜보면 무고라는 이름의 석축으로 차
곡차곡 축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습 무고로 출세하여 예종·성종·
연산군·중종 4대의 영화를 누린 유자광은 전형적 무고형 인간이랄 수
있다. 남이 장군이 혜성이 나타나면 혁명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한 단
지 그 말을 유자광은 대역을 음모하고 있다고 임금에게 무고하여 남이
장군을 죽이고 자신은 당상관이 된다. 그 후에도 임금의 사랑이나 재능
명망이 자신 위에 있거나 사감이 있으면 여지없이 무고로 얽어 없애는
데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 한명회 임사홍을 차례로 무고하고 끝내 김
일손을 얽어 무오사화를 일으켜 당대 명망 있는 선비들을 집단 도륙하
고 있다.

신진 젊은 선비들을 배경으로 정치 세력화하는 조광조를 시기한 남곤
심정은 후궁들을 통해 조광조가 왕 자리를 노린다는 말을임금에게 고자
질하여 사약을 내리게 하고 있다. 송사련 등 천민들은 실세하고 있는
자기네 상전들이 불만스러운 말 한마디 한 것을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
하여 상전 가문을 멸족시키고 있다.

중종때 막개라는 종이 당시 판서요 중종반정 공신인 박영문과 신윤무
가 조정에 대한 불만을 심한 어투로 토로한 것을 듣고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여 역옥을 일으켰다. 이 무고로 이들 아들까지 처형 당하
고 천한 종인 막개는 그 무고 덕분으로 일약 당상관이 되어 허리에 홍
띠를 두르고 말 타고 출퇴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리사욕이 깔린 무
고를 「막개의 홍띠」라 했다. 이 막개의 홍띠 이후 홍띠를 노린 무실 무
고가 잇따라 조정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유세창이라는 천인
이 동몽교관 아무개가 그의 제자 일당을 데리고 반역을 꾀한다는 무고
가 있어 모조리 잡아들이고 보니 열살 안팎의 아이들 1백여 명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영의정 정광필의 손자로 후에 정승이 되는 정유길이도
끼어 있었다.

한말에는 사감이 있으면 동학당이라 하여 무고해서 잡아가게 하고 일
제 때는 독립당이라 하여 무고했으며 광복 후에는 빨갱이라고 무고해서
억울한 죽음과 곤욕을 당한 사람이 비일비재하며 그것이 오늘 각계각층
에 잔존하여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일전 보도에 따르면 4개월 동
안 4백40명을 고발하는 무고 챔피언까지 탄생하고 있다. 이 한국인의
무고심리가 어떻게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흔히들 이동 계약 이성사회인 서양 사람들은 됫박속에 담아두면 정연
하게 있다가도 됫박에서 엎어놓으면 뿔뿔이 제나름대로 굴러가 흩어지
는 낱콩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이성과 계약으로 맺
어지기에 논리나 이치로 따지고 가름하기에 음습한 감정적 응어리가 기
생할 수가 없다. 한데 정착 묵약 감성사회인 한국사람들은 진득하게 엉
키어 더불어 접착해있는 메주콩으로 비유한다.

조상 대대로 한 동네에서 살아오다 보니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기
에 자칫 반감이나 사감이나 원한이나 시샘이나 섭섭함을 사게 된다. 그
메주콩의 음습한 관계가 오래 되어 발효하면 포화 상태에 이르고 그 김
을빼는 행위가 무고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곧 이성으로 관계를 따져서 결판내려 하지 않고 감성으로 가득 채우
기에 그 탈출 수단으로 무고가 생리화하고 체질화한 것일 게다. 거기에
이해가 얽히면 무고나 모략이 가중되고 악질화한다. 탈정착시대인데
도 의식만은 못 벗어나 불명예스럽게 무고 왕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