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작가이자 교수가 초청하는 「서울 미스터리 투어스」. 9월29일
오후 2시 삼성역 입구에서 만납시다.』 우리나라에서 발행하는 영자 신문·
잡지에는 매주 이런 단신이 실린다. 미스터리 투어스(신비 여행)라니?
그것도서울에서. 단박 호기심이 생긴다. 전화를 걸자 천안 외국어전문대
영어과의 스테판 로니 교수(43)가 받는다.

9월18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거리에서 만난 그는 성큼 성큼 앞서가더
니 조그만 찌개집으로 안내한다. 『이 집 김치찌개 정말 맛있어요. 중국
이나 일본 요리보다, 제가 자라난 캐나다의 음식보다 더 입맛에 맞습니
다.』 채식주의자라는 그는 찌개 속에 든 돼지고기를 건져내더니, 밥을
찌개 국물에 말아 매운 김치와 도라지무침을 반찬으로 잘도 먹는다. 한
국에는 갖가지 채소, 나물요리가 많아 좋다는 그는 조계사 옆 산채요리
전문점도 자주 찾는다.

그의 고향은 와 몬트리올 사이 조그만 마을 개너놋웨어. 『인구
가 1만명도 안되는 그 작은 마을에 중국음식점이 4군데나 된다』면서 웃
는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2년 전인 94년 9월. 「서울 미스터리 투어스」
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했다. 한국문화의 진수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
으로 안내한후 그의 역사·문화 강의가 곁들여지는 프로그램이다.

//// 가이드북에 없는 곳 골라 버스타고 다니며 안내 ////.

『여자끼리 손잡고 가는 것을 보고 「한국에는 레스비언이 왜 그렇게
많으냐」고 의아해하는 외국인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대개 몇년씩 한
국에 근무해도 한국 역사나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채 돌
아가지요.』 그는 이런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서
울 미스터리 투어스」를 계획했다고 한다. 여행 가이드 북에는 없는 곳만
찾아다니는 여행이라 해서 「미스터리 투어스」. 만나는 곳은 언제나 지하
철역, 걸어다니며 답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가비는 무료. 『미리
예약을 받는 것도 아니라 몇명이나 올지 예측할 수 없어요. 날씨에 따
라 변동이 심한데, 고정인원이 생겨서인지 늘 10명은 넘습니다. 어떤 때
는 50명넘게 몰려와 가이드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구요.』 미국인, 캐나다
인,인도인, 일본인, 인, 체코슬로바키아인 등 다국적 사람들이 모
이는 「우연한 만남」을 참가자 모두 즐긴다고 그는 말한다.

영어교사 학생엔지니어 사업가 등 직업도 갖가지. 요즘은 외국인 친
구를 사귀려는 한국인들도 많이 참가하고, 한국여행중 신문을 보고 찾아
온 관광객도 있다. 투어 때마다 참가하는 「수제자」도 많아졌다고 그는
자랑한다.

9월29일 계획은 국립묘지에서의 피크닉. 으로 숨진 군인들과
전직 대통령들이 누워 있는 그곳에서 그는 6.25와 시대, 5.6공
과 랑군사태로 숨진 사람들 등 한국 현대사를 강의할 생각이다. 그의 강
의 덕에 한국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이제까지 「서울
미스터리 투어스」가 찾은 곳은 인왕산 국사당, 서대문 형무소, 단군 신
전, 홍제동에 있는 암자, 독립문, 절두산 성당, 백제 수도가 있던 잠실,
양화진 외국인 묘지 등 수십군데. 장소에 얽힌 인물과 역사, 풍습, 종교,
풍수 등 갖가지 이야기를 쏟아내는 로니 교수의 강의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신비 여행」으로 이끈다. 한국역사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은
한국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그는 어려서부터 한국역사나 문화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다고 한다. 『아직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아 영
어로 된 책을 주로 읽습니다. 이제까지 모은 한국관련 책이 1백여권쯤
되지요. 요즘도 고서점을 뒤지고, 무슨 책이 나왔다고 하면 미국이나 영
국까지 주문해서 봅니다.』.

미국 박사과정 중에 있는 그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도 「한
국불교에서의 상징 체계」다. 그는 국사당에서 굿을 본 후에는 무당에게
부쩍 흥미를 느껴 일부러 무당 물건 파는 집을 수소문해 가면과 방울,
동전까지 사들였다고 한다.

왜 서울만 답사대상으로 삼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울은 정말 기막힌
곳』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이 자란 캐나다가 땅덩이는 엄청나게 넓지만
역사가 얕은 데 비해, 서울은 구석 구석 닿는 데마다 「역사」가 숨겨져
있는 게 놀랍다는 것. 책으로 풍수공부도 했다는 그는 『세계 어느 곳에
도 서울 같이 풍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수도는 없다』고 강조한다. 「서울
미스터리 투어스」가 아니더라도 그는 자주 서울로 올라온다. 대형서점에
가서 한국 관련 자료를 찾고 우체국에서 편지도 부치고…. 그 후에는 서
울탐험이다. 책과 자료, 카메라, 지도를 잔뜩 집어넣은 무거운 가방을
든 그는 『어깨와 다리가 튼튼해 문제 없다』고 자랑하며 어디든지 누빈다.

『지도를 보면서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서울 미스터리 투어스의 다
음행선지가 정해지는 것도 보통 이 때지요.』 그는 이제까지 답사한 자료
를 모아 「필그림즈 가이드 투 서울(pilgrim's guide to seoul·서울로의
순례 안내)」이란 책으로 펴낼생각이다. 『외국에서도 동시 출간돼 사람들
이 한국을 찾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10대 때부터 꾸었던 꿈 실현" ////.

『어렸을 때의 꿈을 지금 이루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가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2년 전이지만, 그 인연은 30년 전인 10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사춘기 시절 어쩐지 동양철학이나 문화에 끌렸다. 유교 불교 도교
가말하는 자연의 질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공감이 갔다. 친구들이
동양철학에 빠진 그를 『노자』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웃는다. 그 때부터
아시아중에서도 특히 한국문화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잘 알려져있지 않아 그만큼 신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관련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국에 오고 싶었다. 92년부터 2년간 중국 무
한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며 한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봤다. 94년
9월 마침내 시사영어사의 ELS 영어교사로 한국에 왔고, 지난해 말 천안
외국어전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인에 대해 그는 『아직도 동양철학적인 바탕 위에서 움직인다』고
말한다. 『출근할 때는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차려입고, 놀
러갈 때는 또 거기에 맞는 옷으로 바꾸잖아요. 그만큼 자신의 역할, 위
치를 중시하는 거지요.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옷차림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배움을 중시하는 태도도 유교적인 문화에서
나온다고 그는 평가한다. 『한국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즐거워요. 호
기심 많고 배우려는 의욕이 대단하지요. 선생에 대한 존경심도 남다르고
요.』.

한국문화에 대해 그는 중국, 일본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고 말한
다. 『오히려 캐나다나 제 조상의 고향인 아일랜드, 같은 곳과 닮
았지요. 모두 강대국 사이에 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 문화를 지켜나
간 나라들입니다.』 한국문화는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친근하며, 인간적으
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절을 가봐도 그래요. 중국이나 일본의 절은 너
무 근엄하고 차갑고 지적이라 아무나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요. 특수층을 위한 곳이죠. 그러나 한국의 절은 누구에게나 문을 열
어놓고 있어 친근하고 정서적입니다.』 얼마 전 그는 캐나다 잡지에 한국
의 문을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창호지를 바른 한국 전통문은 안과 밖을
단절시키는 나무 문과 달리 햇빛과 공기가 통하는, 완전히 닫히지 않는
문이란 것. 『공간을 나누되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고 상호 통할 수 있게
하는 게 한국 건축의 특징입니다. 자연을 위압하거나 지배하려는 게 아
니라 인간과 자연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지요.』 그는 이
렇게 한국땅에 살면서 깨달은 한국문화의 특징을 서구에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까지는 주로 잡지에 써왔는데, 책으로도
낼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문화와 서구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