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국면에서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둘러싸고 보수세력과 진보세
력간에 대격돌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임금 및 고용대책, 노사개혁 문제, 재벌정책, 가입문제, 금융소
득 종합과세 같은 커다란 정책방향부터 위천공단 문제, 영광 원전문제
같은 구체적인 정책에 이르기 까지 경제현안에 이념대립이 개입되는 양
상을 보이고있다.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학계, 행정부가 경제현안에 따라 극력 대립
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부나 정치권은 리더십을 발휘
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타협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경제부처에서 정책 담당자들은 요즘 이런 문제를 끄집어 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 명쾌한 해결방안을 제시하
는 사람은 드물다.
예를 들어 항간에서는 응책을 둘러싸고 당-정이 뒤바뀌어 있다
는 말들이 많다. 평소같으면 당이 대중적인 인기를 의식,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반대할텐데, 요즘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원같은 이는 『앞으로 2년간 모든 임금
을 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년도 정부예산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의원들도 많다.
그러나 은 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다. 한 관계자는 『정당에서
떠들어 봐야 결국 (정치적) 책임은 정부에 돌아온다』며, 집권당의 움직
임에 냉소적인 반응이다.
정부의 임금정책에 대한 입장도 판이하게 다르다. 정부가 2급이상 공
무원임금동결 방안이 나오자, 재계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으로
「총액임금 동결」이란 예상밖의 호응으로 치고 나갔다. 재계가 기다렸다
는 듯이 한술 더뜬 셈이다.
반면에 노동계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
다』고 반발했고, 정부는 이번엔 「생산성 범위내 인상」으로 한 걸음 후퇴
했다.
이번주에는 노동관계 법률 개정문제가 커다란 현안으로 등장했다. 한
국의 진보와 보수세력이 정면으로 맞붙어있는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는 이
미 두 차례나 회의를 연기한 끝에 19일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지만, 난
항만 거듭하고 있다. 타협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 뿐이다.
최근 대외국 실무자들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의 한국
노동제도 관련 보고서가 공개되자 크게 기뻐했다. 측이 우
리 경제계의 핫이슈인 복수노조 허용문제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이다.
은 이 보고서를 즉각 측에 발송했다. 우리 정부에 복수노
조를 허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측에 『미국도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 복수노조 허용에 명백히 반대하는 재계 입장
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관계자는 『다만 와의 협상에서 다
소유리한 고지를 점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노사관련법 개정에 관해 공식적으로 『정부안은 없다. 노
사간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정리해고제 및 변형근로
제(재계주장), 복수노조허용 및 제3자개입금지 폐지(노동계 주장) 등을
정부가 모두 수용할지, 아니면 한쪽만 수용할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재계에선 지난 9.3 대책 발표 당시 경제부총리가 최소한 노
동문제 개혁의 방향에 대해선 입장을 제시했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많
다. 정부내에서도 노동부는 친노동계, 통산부는 친재계로 나뉘어 있다.
정부의 재벌정책이 반영되어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문제도 어정쩡
한 상황이다.
한부총리가 지난3일 『공정거래법에 재계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말
한 이후, 공정위는 친족독립경영회사 제도 개념을 빼기로 하는 등 재벌
규제 정책을 크게 완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2001년까지 30대 재벌의 계열사간 채무보증을 전면 폐지하는
안은 여전히 타협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를 놓고 진보그룹인 경실련 등
은 「정부의 재벌정책의 후퇴」로 규정짓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편, 가입문제에는 진보그룹은 물론 내에서 조차 반
대주장이 있는 상황이다.
자민련 등 야당도 『새 경제팀이 내년 대선을 겨냥 팽창예산을 짜고,
가입을 서두르는 등 정치논리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문제는 진보그룹과 보수그룹이 모두 반대하는 의견을 내
놓고 있는 사안이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에 가입하면 근로자들에게
는 노동조건이 좋아지기 때문에 진보그룹이 찬성할 법하지만, 에 가
입하는 것은 한국경제를 무작정 개방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있어 진보세력
쪽에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대해서도 여당내 일각에서 연기 및 보완론이 제
기되고 있으나, 정부는 『연기는 안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재계는 물론 완화론을 지지하고 있으며, 자영업자들도 종합과세제도
가 완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반면에 진보세력들은 문민정부의 상징인 「개혁」작업의 후퇴라고 맹비
난하고 있다.
정부당국자들은 『모든 문제는 김대통령의 귀국이후 정리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제현안들을 해결하기에는 현
재의 정치권은 너무 무력하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