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하기 위해 떠났던 역사적 장소는 어디
인가.』.
지금까지 백제가 멸망하자 그 유민들이 부여에서 배를 타고 일본
으로 건너간 것으로 막연하게 알려져 왔으나, 그 역사적 현장이 전남
보성군 조성면 조양포구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전영래원광대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오는 26일 보성군 조성면이
주최한 한-일학술대회에서 이같은 주장이 담긴 「백제의 멸망과 동로고
성의 조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교수는 우선 백제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하는 내용이 실린 「일본
서기」 천지기 2년(663년)조의 기록을 면밀하게 검토,기록에 나타난 지
명들을 찾고 있다. 일본서기 기록을 보자.
『9월 7일, 백제 주유성이 비로소 당에 항복했다. 이때 (백제)국인
들이 서로 말하기를 「주유성도 무너졌으니 어찌할 수 없도다. 백제의
이름도 오늘로써 다했으니 조상의 묘가 있는 고향땅에 어찌 다시 갈수
있으리오. 다만 데례성에 가서 일본군장들과 만나 서로 앞으로의 계책
을 의논할 수밖에 없구나.」 드디어 침복기성에 있던 처자들에게 나라
를 떠날 뜻을 알리게 하고, 11일 모데(미동)를 출발해 13일 데례에 도
착했다. 24일 일본선사와 좌평 여자신, 달솔 목소귀자-곡나진수-억례
복류를 비롯한 (백제)국민들이 데례성에 도착하자, 다음날 비로소 배
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위 기록에서 주유성 모데 데례 침복기성등의 지명이 나온다. 주유
성은 전북 부안군 「주유산성」, 모데(「데」자는 궁의 마지막 글씨지점에
서 왼쪽으로 길게 쓰는 형태)는 현재 광주와 전남 남평일대로, 침복기
는 전남 강진, 데례(데는 모데의 데와 같은 글자)는 백제 동로현(신라
경덕왕 16년, 757년 조양현으로 개명, 현재의 보성군 조성면으로 전교
수는 각각 비정했다. 남평은 백제시대에 미동부리(미다부리)라 불렀는
데,신라통일이후 미다부리정을 설치했고, 신문왕 6년(686년)에 무진주
를 설치했다.여기서 나오는 미동 미다 무진 (진은 이두로는 「도」로 읽
는다)등은 모두 「미데」 「무도」를 표기한 것으로 일본서기에 나타난 모
데와 같은 소리빌림글자라는 것.
전교수는 옛 동로현인 현재의 조성면을 찾아 백제시대 유적을 확
인했다. 조성면사무소뒤 금장산에 길이 2㎞에 이르는 전형적인 백제토
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백제식 토성, 즉 동로고성은 축조방법
과 토기양식등이 전북 부안의 구지리토성이나 백산토성과 같은 백제식
토성. 조양포구는 이곳에서 남으로 약 2.5㎞ 뻗은 구릉 동남변에 자리
하고 있다. 동으로는 고흥반도를 1㎞사이에 두고, 남쪽은 득량만으로
트여있어 천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조양포구가 백제 유민들이
떠났던 최후지점이라고 전교수는 말한다.
망명 이후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되었나. 이 문제에 대해선 다카
구라 히로아키 일본 서남학원대 교수가 「백제유민과 다자이후(태재부)
의 건설」을 발표해 의문을 해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