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는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재벌총수들이 불구속
기소된 만큼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
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같은 예상을 깨고 기소된 재벌총수 8명중 절반인
4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전직 대통령을 「부정축재」로 처벌하는 마당
에 재벌총수라고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뜻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다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이라는 「칼날」까지 빼
들지는 않았다. 재계와 해당 기업에 미칠 충격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재판부는 전-노씨가 받은 돈의 성격에 대해 「뇌물」이 분명하다고 결
론을 내렸다. 이들이 줄곧 주장해온 「통치자금(또는 정치자금)」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직무상 이권이나 대가관계가 없는돈」으로 도
저히 볼 수 없다』는 단정적 표현까지 썼다.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
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재벌총수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한 반면, 일부에 대해
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뇌물액수가 상대
적으로 많은 총수가 집행유예를 받아 궁금증을 더해주고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종합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구체적 이권 청탁」과 관련해 금품을 제공했는지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
용한 것 같다. 특정한 사업이나 이권 얘기 없이 『그냥 잘 봐달라』는 취
지로 주는 돈도 이른바 「포괄적뇌물」로 뇌물임이 분명하다고 의 주
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청탁을 했으면 뇌물성
의 정도가 더욱 무겁다는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들이 바로 실형을 선
고받은 재벌들이다.

실제로 동아 (150억), 대우 (150억)회장은 아산만 해군
기지, 진해 잠수함기지 공사 수주와 관련해 노씨에게 돈을 준 점이 인
정됐다. 한보 (1백억), 진로 (1백억)회장도 수서택지 특
혜분양, 충북 현도 지방공단 지정등과 관련해 청탁을 한 점이 드러나
실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중 동아 최회장에게 가장 무거운 징역
2년6월이 선고된 것은 액수가 제일 많은데다 횟수도 잦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과」 유무도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4명의 「실형 총수」중 진로
장회장을 제외하곤 모두 「뇌물 공여죄」로 처벌된 전력이 있는 재범이다.

실형 총수중 유일한 초범인 장회장의 경우, 먼저 노씨에게 면담을
제의하는 등 「능동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점이 중형 선고의 배경이 됐
다. 반면 집행유예가 선고된 삼성 (1백억), 동부 (40억)회
장은 모두 『포괄적으로 선처해달라』는 취지로 돈을 준것으로 인정돼 집
행유예를 선고한 것 같다. 대림 (50억), 대호건설 이건(50억) 회
장은 아산만 해군기지 공사와 관련해 돈을 주는 등 「청탁」이 있긴 했지
만,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실제 이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고려
됐다.

한편 전-노씨 비자금 조성에 적극 개입한 5-6공의 경호실장 2명이
모두 중형을 선고받은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 재판부는 『대통령의 손
에 때를 묻힌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씨측의 이현우 전 경호실장은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됐고, 전
씨측의 안현태씨는 징역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전-노씨
비자금 사건 관련자중 실형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까지 된것은 안씨가
유일하다. 노씨 비자금 조성에 적극 개입해 「비자금 3인방」으로 꼽혔
던 , 이원조 전의원에게도 징역 3년씩의 실형이 선고됐다. 전씨
비자금조성에도 개입한 이전의원에 대해선 『처음 많은 액수를 제시했다
가나중에 깎아주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재판부는 밝혔다.